파괴와 혁신을 불사하는 어느 감독의 확고한 신념, 영화 "그물"의 김기덕
파괴와 혁신을 불사하는 어느 감독의 확고한 신념, 영화 "그물"의 김기덕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1.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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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NEW>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 가운데 하나인 김기덕, 그가 영화 ‘그물’로 돌아왔다. 1996년에 영화 '악어'로 데뷔한 이래 수많은 캐릭터들을 보여주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확장했다. 그 과정은 매 순간이 이슈였고 그렇게 모여 한국 영화의 역사가 되었다. 그런 김기덕 감독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놓고 촬영한 다큐 영화 '아리랑'을 작업한 뒤부터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개인을 통해 더 큰 것을 이야기하려는 그의 욕망은 이제 더 뜨겁고 강렬해졌다.

영화 '그물'을 본 사람들은 김기덕 감독님께서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저 스스로는 안 변했는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죠. 예전에는 개인의 욕망을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국가 안전 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변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로는 드물게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화를 봤을 때에는 모호할 수도 있어요. 그런 면에서 놀라운 등급이 나온 거죠. 등급위원들도 이제 청소년들이 남북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느끼신 듯합니다.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를 집필하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그물'에 대한 생각은 예전부터 했습니다. 1970, 80년대에 어선 조사를 많이 했어요. 그때 어부들이 옷이나 신발을 다 벗고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들에게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 시나리오를 마무리할 즈음 류승완 감독님이 류승범 씨를 소개해줬어요. 극중 남철우의 캐릭터와 잘 맞겠다 싶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남북관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저는 남북문제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는데 전쟁 때문에 고통 받다가 돌아가셨어요. 북한을 적대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러한 시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죠. 극단적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제2의 한국전쟁입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우리가 희생되는 것이 가장 두려워요.

이 영화에 자전적인 부분이 있습니까.

아버지께서 한국 전쟁에서 겪었던 고통을 제가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북한에서 고문을 받으셨어요. 그게 제게 그대로 온 것 같아요. 그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살면서 분노로는 인생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독은 적대감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어요.

흔히 이념 영화에서는 상대방을 좋거나 나쁘게 보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있는데요. 그런데 '그물'에는 서로 대립하는 양쪽의 입장이 객관적으로 나타나 있어요.

영화를 보면 국정원에 대해 공격적인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의 조사과정만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겠죠. 북한에 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거라고 예상할 거예요. 하지만 남철우는 북한에서도 똑같은 일을 겪습니다. 한 개인을 놓고 두 체제가 잔인하게 유린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누가 더 좋고 나쁘냐를 떠나 남북의 본질적인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영화에서 류승범 씨의 북한 사투리 연기가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승범 씨한테 북한 사투리에 대해 도움을 준 부분은 없습니다. 북한 사람한테 검증을 받은 적은 있지만 연기에 관한 부분은 승범 씨가 다 알아서 준비했어요. 수염을 기른 것도 승범 씨 아이디어지요.

남철우를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국정원 요원을 이원근 씨가 맡았어요. 오디션으로 캐스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몇 번 오디션 영상을 보는데 원근 씨가 가장 눈에 띄었어요. 대사 톤에 안정감이 있었고 승범 씨와 충돌하는 장면에서도 자기 에너지를 잘 표현했어요.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습니다. 진지하게 임하면서 연기했어요.

정하담 씨는 외모가 개성이 있고 연기력이 워낙 뛰어난 배우입니다. 극중 진달래 역할을 맡아서 잠깐 나오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직접 작업해보니 어떠셨는지요.

저는 좋은 연기자들과 너무 잠깐 촬영한 게 항상 미안해요. 그런데 배우들이 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하고, 하담 씨도 그런 경우입니다. 하담 씨가 나오는 포장마차 장면에서 감정을 절제하며 대사를 툭툭 던지는 연기가 좋았어요. 눈을 보면 슬픔이 고스란히 보이는데 대사를 들으면 그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작은 역할인데도 정말 최선을 다해줬어요. 그런데 하담 씨는 본인이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해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마웠죠.

김기덕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기 원하는 배우들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제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단정 지을 수 없는 매력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배우를 극단까지 몰아가서 감정을 폭발시키게 만들어요. 배우들은 그런 부분에 항상 욕심이 있거든요.

'그물'을 다양성 영화로 보는 시각도 있어요. 흥행영화 아니면 다양성영화로 보는 잣대에 걸쳐 있습니다. 영화를 이렇게 보는 시각에 대해 영화인으로서 아쉬운 점은 없으신지요

저는 '그물'이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느 한 감독의 고민을 담은 영화가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야 다른 감독들이 더 많은 용기를 얻을 것 같아요. 다만 이 모든 것은 여러분들께서 바꿔주셔야 해요. 의미 있는 영화들을 자주 봐주신다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 시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앞으로 김기덕 감독님의 상업영화도 볼 수 있을까요.

현재 준비 중인 작품에서 그런 시도를 한 것 같아요. 핵심적인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 글로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예산으로도 만들 수 있는 영화의 소재는 충분히 있습니다. '그물'이 잘 된다면 다른 시장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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