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하니? 나는 괜찮아 영화 "걷기왕"
꼭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하니? 나는 괜찮아 영화 "걷기왕"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0.23 16: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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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매번 같은 꿈을 꾼다. 다시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돌아가 시험을 보는 꿈. 시간이 촉박한데 답지는 텅텅 비어 있다. 안절부절못하다 꿈에서 깨면 아직도 그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이런 꿈을 꾸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내 주변 친구들, 더 나아가 그 시절을 겪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 영화 ‘걷기왕’의 주인공 만복(심은경 분)이도 다르지 않다. 항상 명확한 꿈이 있어야 정답인 것처럼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와 같은 만복이가 선택한 인생은 무엇일까.

걸음을 측정하는 기계 ‘만보기’와 이름이 비슷한 여고생 만복이의 성장 스토리를 그린 영화 ‘걷기왕’은 잔잔한 스토리 구성이다. 자칫 새롭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스토리 구성에 백승화 감독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만화처럼 생생한 인물 캐릭터를 구상하기. 그의 선택은 옳았다. 만복이와 싱크로율 100%를 넘어서는 심은경은 영화 ‘써니’ 때와는 또 다른 이미지의 여고생을 연기했다. 과장되지 않는 코믹한 연기와 매일 왕복 4시간을 걸어 다니며 학교생활을 하는 만복이의 무기력한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 만약 만복이가 심은경이 아니었다면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만의 생생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리고 또 다른 숨은 조력자. 배우 안재홍. 만복이가 키우는 소의 독백을 맡은 안재홍은 단지 목소리 하나만으로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만복이의 일상을 지켜보는 소의 독백이 나올 때마다 웃음이 빵빵 터지는 영화관. 안재홍이 '걷기왕'에서 단연 돋보이는 카메오가 아니었을까.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으로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는 행동을 하는 만복이. ‘손가락 촬영 백 번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순박한 아이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만복이가 꿈이 없는 무기력한 아이로 나온다. 그러나 꿈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일 뿐 그녀는 언제든지 멋진 꿈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손가락 촬영 행동을 통해 백승화 감독은 보여주고자 했다. 꼭 학창시절에 진로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판단일 뿐이다. 진로가 확실하지 않은 학생은 자신이 꿈을 찾아줘야 한다고 판단하는 담임선생님(김새벽 분), 만복이의 멀미 증후군을 의지박약으로 판단하는 만복이 아버지(김광규 분). 두 어른의 확실한 캐릭터가 현재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만복이는 ‘걷기왕’을 통해 말한다. “만복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야, 언제든지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천천히 걸어가도 돼“라고 말이다.

슬픈 영화라는 타이틀이 아님에도 ‘걷기왕’을 보고 눈물이 났던 건 백승화 감독의 진심 어린 위안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만복이를 보며 자신을 떠올리고, 꿈이 없던 무기력했던 지난날이 생각난 이들에게 그는 얘기한다. “괜찮아. 잠시 만복이처럼 쉬어가도 너는 괜찮아.” 만복이의 라이벌 경보 선수들조차 못된 캐릭터로 그리지 않고 그들 또한 자신의 페이스대로 노력하는 아이들로 이미지를 표현한다. 그들의 경쟁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니다. 1등이 성공이라 정의하는 것도 아니다. 백승화 감독은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힘든 상황에서 “잠시 쉬어갈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만복이를 대견스럽게 격려한다.

단 한 번도 여행을 상상해볼 수 없던 만복이가 경보대회를 계기로 자신의 꿈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성장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경쾌한 엔딩 송처럼 만복이는 유쾌하고 보람찬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직도 귀에서 들리는 듯한 리코더 소리처럼 ‘걷기왕’은 여운이 넘치는 따뜻한 영화였다.

김서해 free70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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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6-11-25 08:07:16
만보기=만복이
표현이 참으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