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보는 "눈"을 가진 영화감독 조정래
과거를 보는 "눈"을 가진 영화감독 조정래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0.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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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p_5003 <사진제공=박호 photographer>

충무로가 변하고 있다. 흔해 빠진 소재는 과감히 집어 던지고 남들이 하지 않은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변화를 가장 선두로 달린 조정래 감독. 오랜 기다림 끝에 운명과도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인권영화로 인정받고 있는 영화 '귀향'. 오히려 국민이 나서서 영화를 홍보하는 해프닝까지. 그대, 영화 '귀향'을 아직도 모르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정래 감독과 함께 영화 '귀향'을 만나보자.

"마이너(minor)가 아닌 나만의 메이저(major)"라고 말한 조정래 감독의 오랜 메이저(major)는 무엇일까. 관심 있는 분야를 십 년간 계속하면 그 분야의 '신'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14년 동안 영화 '귀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조정래 감독은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자가 아닌가. '그런 사람이 이제 더는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신조를 보여줬다. 우연히 봉사활동을 가서 만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길만 걸어온 그의 이야기를 기울여보자.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여러 자세를 취하던 조정래 감독이 '귀향'의 포스터 앞에서는 공손한 자세를 취한다. 자신이 정해놓은 자세 이외에는 하지 않겠다고 정중히 거절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지키려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느낀다. 진정한 신조란 저런 형태의 모습이 아닐까.

내 삶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인생은 완벽한 반전을 선사한다. 단면만을 바라보고 감히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라. 조정래 감독을 만나 느낀 점은 딱 하나다. 내가 상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룬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에 딱딱함, 진지함, 무게감 등 온갖 단어들이 머릿속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딱 한 가지만 골라잡아도 이 단어.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실제 만난 조정래 감독은 '신중함', '친절', '정중함'이란 단어들로 단단히 무장된 모습이었다. 누가 들으면 영화배우에 대한 찬사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반전을 선사하는 조정래 감독의 매력은 인터뷰 곳곳에 넘쳐난다.

자체적인 마케팅이 아닌 자발적인 마케팅. 이 영화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낳은 효과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온 국민이 나서서 자발적인 마케팅을 하는 영화라니. 인간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한 관심도가 높기 마련이고 이러한 심리가 영화의 성공 요인이 되었다. 단지 영화가 흥행하고 끝나버린 요인이 아닌 국민 영화 '귀향'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졌다.

- 조정래 감독 인터뷰

영화 '귀향'이 상영된 이후 일어난 변화

영화 '귀향'이 일본에서 시사회를 했다고 들었어요. 현재도 많은 상영회 요청이 들어온다던데요. 영화를 본 일본 관객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실제 반응은 어땠나요?

말로 표현하기가 힘드네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정말 많이 웁니다. 믿지 못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일본 정부가 하는 얘기만 듣다가 실제 사실을 알고 굉장히 놀라죠. 재일교포분도 3세, 4세이신 분들이 많아 군 위안부에 대해 정확히 모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 중 일본 관객들은 재일교포 지인들의 초대를 받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분들이 영화를 보시고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요. 제 손을 잡고 우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일본에서 상영하기 전에 우려했던 점이 있나요?

이전에도 위안부 소재 영화는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을 때 일본 우익 단체들이 반대도 하고 협박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일본 상영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정말 조심해서 상영준비를 했고 다행히도 아직까진 별다른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즘 굉장히 바쁘신 것 같아요.

최근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모자라요. 해외 일정과 공동체 상영 등. 제가 미처 소화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아요. 국외에서도 '귀향'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들 저를 보고 싶어 하신다기보다는 '귀향'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생각이 많네요. 미국 일정도 이번 달 말일부터 잡혀 있어요.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달라스 등 여러 곳을 가야 합니다. 상영일이 거의 오전에 한번, 저녁에 한번. 이렇게 일정이 잡혀 있어서 굉장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갈 예정입니다.

힘드시겠어요. 일정에 우선순위가 있나요?

우선순위는 무조건 학생들이에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까지 '귀향'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요. 덕분에 많은 학교에서 불러주고 있죠. 죄송한 말씀이지만, 기업체에서도 요청이 많이 들어오지만 우선적으로 학생들과 함께하려 노력해요. 저를 많이 찾아주시는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업실을 둘러보니 유독 학생들 팬레터를 많이 받은 것 같네요. 유명한 배우 못지않은 인기네요.

초중고 학생들에게 팬레터를 자주 받아요. 그래서 저도 기분이 좋아요. 그들 또한 영화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다고 저에게 얘기해주기도 합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죠.

위안부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박근형 선생님도 다음 작품으로 위안부 소재의 영화 '수선화'의 위안부 피해자 남편 역을 연기할 예정이라고 해요. 이렇게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대중들에게 다가갈 기회를 넓힌 계기가 '귀향'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에 의한 의무감 또한 생겼을 것 같은데요.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제가 처음은 아니에요. 추상록 감독님의 영화 '소리굽쇠'와 변영주 감독님의 영화 '낮은 목소리', 임선 감독님의 영화 '마지막 위안부', KBS드라마 '눈길' 등 저 이전에도 많은 위안부 영화가 있었죠. 그런 선배님들 덕분에 흐름 속에서 '귀향'이 나왔어요. 훌륭한 작품들이 많아 감히 제가 의무감을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의 위치는 아닌 것 같아요. 앞서 선배님들이 저보다는 더 의무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박근형 선배님의 영화 선택이 감사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투자사나 배급사에서 이런 소재의 영화들은 "흥행이 떨어진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얘기로 앞으로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무조건 안 된다고 거절당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귀향'의 감독으로서 군 위안부 소재의 영화를 시도하시는 분들이 잘되시길 바랍니다.

인권을 소재로 제작하는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예비 영화인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그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귀향'을 계기로 인권 영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니 너무나 감사하네요.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아픈 사건들이 많아요. 그런 해결되지 않은 현대사적인 아픔에 대해 많은 분이 관심을 두십니다. 대중적으로도 관객의 인식과 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아요.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더 많은 소수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귀향'이 이러한 분위기에 약간의 일조를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네요. 더 많은 소수자를 위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어떠한 영화를 제작하려 하나요?

'귀향'의 14년 기록인 다큐멘터리가 내년 3·1절에 개봉될 예정이에요. 또한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사극 장르로 조선 시대 천민에 대한 이야기죠. 광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선 후기에 있었던 광대의 이야기와 함께 판소리를 접합시키고자 합니다. 그 시절로 따지면 지금 아이돌 그룹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의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광대와 판소리의 조합이라니 신선한 시나리오가 탄생할 것 같아요.

주변 분위기는 반반이에요. '너는 왜 마이너(minor)에만 관심을 가지냐'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소재나, 천민에 관한 소재나. 저에겐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입니다. 관심 있는 분야를 계속하는 것이 저의 목표죠.

-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귀향'은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서 촬영이 어려운 상황에도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어요. 그래도 영화에 관해 아쉬운 부분이 있나요?

정말 힘든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술이나 이런 부분에서 돈이 있으면 더 할 수 있었던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요. 그렇지만 각 분야에서 재능기부에 가깝게 본인의 능력을 발휘해 도와주신 분들이 많아서 영화가 더욱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11년 동안 시나리오를 고치고 썼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 제작 기간이 14년 정도 걸렸어요. 제작과 투자, 배급까지 진행하기가 오래 걸렸지요. 그러나 시나리오를 11년 동안 작업하진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3번 다시 작업했는데요. 2005년 처음 쓴 시나리오와 거의 비슷한 맥락으로 작업했습니다. 인물의 직업이 바뀌었을 뿐 3번째 시나리오도 처음에 쓴 시나리오와 큰 줄기는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14년,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견뎠나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약속 때문이었죠. 2001년에 나눔의 집 봉사자로 처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뵙게 되었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기승 전 '귀향'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안부 문제를 안 이상 꼭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영화로서나마 피해자분들을 집을 모시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절대 포기할 수 없었어요. 지금도 저는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귀향'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제공해 주셨지요.

01 <사진제공=와우픽쳐스>

작품 속에 한국의 토속적인 소재들이 많아요. 노리개나 무당 등 한국적 소재들에 대한 의도가 있나요?

제가 영화감독이기도 하지만 판소리 고수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통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평소에 많아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한국의 문화를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렸으면 좋겠어요. 영화에 진도 씻김굿이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종교를 떠나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이 고향으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의상이나 소품들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특히 노리개는 색상이 '귀향'과 잘 맞아 떨어졌어요. 만약 검은색이 아닌 다른 밝은색이었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셨다니 감사하네요. 맞습니다. 영화의 의상이나 소품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9월 6일부터 12월 중순까지 영화 소품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스페이스 신선으로 구경 오시면 됩니다.

다음 영화도 음악이 중요한 소재인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귀향' 또한 음악에 대한 많은 고민이 엿보이는 영화였어요.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네.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한국전통음악이요. 판소리 무형 문화재 고법 이수자로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도 했습니다. 92학번으로 영화 연출을 전공했지만 우리나라 국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서편제'를 보고 감동하여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귀향'이 올해 나온 영화라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체감으론 굉장히 우리와 오래 함께한 느낌이 들었어요. '귀향'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계기가 무엇인가요.

'귀향'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위안부 문제에 여러분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기도 할 거예요. 국민이 이 문제가 어서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열망, 바람들이 계속해서 이 영화를 이끌고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10억 엔에 대해 할머니들의 입장에선 너무 괴로운 일이죠. 할머니들께서 길거리에서 기사회견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문제는 정치적인 얘기가 아닌 인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건들이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시키지 않나 싶어요. 눈을 돌려보니 마침 '귀향'이라는 영화가 있고 그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언론에선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장점만 언급합니다. 혹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저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장점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도와주신 분께 너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티켓을 다 드리고자 노력했어요. 영화는 정산되는 과정에 있어 영화가 끝나자마자 정산되는 것이 아니기에 계속해서 돈을 빌리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돈을 빌려서 티켓을 보내 드리기도 했어요. 응원해 주신 분께서 주소가 바뀌거나 실수로 누락된 분들께도 계셔서 그분들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분이 상황을 이해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힘들어서 해야만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모든 과정은 고통 없이 나오는 것이 없어요. 후원하시는 분들도 마음 졸여가면서 영화를 응원해 주셨고 이 영화는 그분들이 만든 영화입니다.

'광대'가 소재인 다음 영화도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고 싶으신가요.

다음 영화도 기회가 된다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고 싶어요. 벌써 개인 투자를 원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모자라는 비용이 생긴다면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다음 작품도 저희 힘으로만 만든 영화가 아닌 겸손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김서해 free70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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