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차인줄 알았더니 벤츠 같았던 영화 "범죄의 여왕"
소형차인줄 알았더니 벤츠 같았던 영화 "범죄의 여왕"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8.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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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주)콘텐츠판다>

'고시원에서 수도요금이 120만 원이나 나오다' 뉴스 제목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일이 정말 일어났다. 단 한 줄만으로 상황의 경위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 사건이 영화의 시작이다. 평범하지 않은 스토리 덕분에 영화 전반부터 몰입도가 최고다. 시작부터 화려한 이 영화의 전말이 무엇일지 예측해보며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는 엄마 양미경(박지영 분)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그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사건에 개입되자 더욱 미궁에 빠지는 문제. 과연 수도요금의 원인은 무엇일까.

양미경이 만난 인물들은 하나같이 특이하다. 그러나 그 특이한 사람들을 평범하게 대하는 것이 양미경의 특징이다. 한곳에 모아두면 절대 함께 어울리지 못할 사람들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색으로 물들인다. 성격 더러운 양아치 개태(조복래 분)를 조력자로 만들어버리는 그녀의 매력이란. 남이 보면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괴짜 덕구(백수장 분)도 국정원 못지않은 정보통으로 만들어버린다. '또라이'로 통하는 게임 폐인 진숙(이솜 분)조차 마음을 열게 하는데, 이렇게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지만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그녀에게 어찌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들'(김대현 분)이다.

양미경은 아들을 위해서 목숨 걸고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아들에겐 목숨보다 더 소중한 시험이 있다. 그동안 노력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엄마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아들과의 갈등이 숨어 있는 범죄자와의 대치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극 자체는 코믹하지만 하고자 하는 얘기들은 진지했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가볍지 않고 진지하게 다가갔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들의 삶을 단지 스토리의 표현으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돋보였다. 그들의 삶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조사를 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들만이 사용하는 언어, 일상, 행동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영화에서 아들이 핸드폰 진동 때문에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고무줄로 핸드폰을 자신의 손목에 묶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절대 그들의 삶을 자세하게 조사하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 '범죄의 여왕'의 색깔은 확실하다. 이요섭 감독이 영화에서 원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영화의 색채에 주목해보면, 조명, 의상, 장소 등 모든 미장센이 이 영화의 장르가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전체적으로 누아르를 연상케 하는 미장센이 신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고시원이라는 장소를 특별하게 보이게끔 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크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영화 속에 표현된 묘한 긴장감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가 펑키해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요섭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의 색감이 다채롭게 사용되었다.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특수필터를 사용한 조명 덕분에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느끼게 된다. 평범한 고시원이 사람 하나 죽어 나가도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스릴러적인 공간으로 탄생했다.

카메라 기법 또한 흥미롭다. 주로 방안에서 남몰래 바깥을 주시하는 현관문 외시경을 통해 인물이 느끼는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전체가 아닌 부분밖에 보지 못하는 현관문 외시경의 특성을 살려 숨 막히는 범죄자와의 대치상황을 카메라로 표현했다. 또한, 좁디좁은 고시원 방안을 최대한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의 위치와 구도를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진숙의 방을 표현하는 부분에선 카메라가 진숙이 게임을 하고 있는 옆에서 움직이며 전반적인 방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굳이 시나리오에서 표현하지 않아도 평소 진숙의 일상을 관객이 예상할 수 있게끔 한다.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또한 중요하다. 죄책감을 느끼는 범인이 앞에 있는 여학생을 보고 자신이 죽인 피해자라 착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슬로우 모션 기법으로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범인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을 처리하는 부분에선 특히 클로즈업이 자주 사용된다.

'범죄의 여왕'은 독립영화이지만 다른 고예산 상업영화들보다 모든 면이 완벽했다. 이요섭 감독이 완벽주의자라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전반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범인에 대한 부분이다.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빨리 풀려버린 느낌이랄까. 긴장감은 꾸준히 이어졌으나 어느 정도 다들 예상할 수 있는 뻔한 결말이었기에 스토리에 대한 부분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장치들로 스릴감 넘치는 장면들을 집어넣었지만, 스토리 자체가 결말에 대한 힘이 부족해서 영화를 보고 난 후 스토리에 대한 여운이 길지는 않다. 그러나 색다른 소재들을 잘 활용한 스토리임에는 틀림없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 '엄마'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흔치 않은 캐릭터로 만들어낸 부분에 대해선 이 영화의 매력이라 인정한다. 마치 '총명탕'을 제대로 마신 감독의 감각적인 영화였다.

김서해 free70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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