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관객은 선택했다, 영화 "밀정"
이미 관객은 선택했다, 영화 "밀정"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9.26 2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ovie_imagek5sd8g4c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2016년 영화의 트렌드 '장르 시대극'

올해 유난히 극장가에서 시대극이 많이 상영됐다. 영화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일사각오' 등 다양한 시대극이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 시대극 영화가 2016년 추세가 되었다. 예전에는 꺼렸던 시대극에 대한 이미지가 '시대극을 선택하면 중박은 친다'라는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 또한 이 트렌드에 동참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벌써부터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긴장감 넘치는 스파이 영화인 '밀정'이 얼마나 김지운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가미되었는지 살펴보자.

김지운 감독이 돌아왔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변신의 귀재로 유명하다. 영화마다 새로운 장르와 소재를 찾아 나섰고, 그의 영화에 대한 선택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았다. 첫 영화인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부터 공포 영화 '장화,홍련', 누아르 '달콤한 인생', 한국판 웨스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복수극 '악마를 보았다', Sci Fi(Science Fiction 공상과학소설) 장르 '인류멸망보고서'까지. 변화무쌍한 도전들이었다.

이어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스파이물인 '밀정'으로 찾아왔다. 김지운 감독 특유의 액션씬이 가득하다. 일본 경찰이 기와를 기어오르는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터 스릴감을 선사한다. 여지도 주지 않고 적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연상된다. 김지운 감독의 의도대로 콜드 누아르를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잡다한 스토리는 집어넣지 않았다. 하나의 큰 줄기만 잡고 영화를 이어나가겠다는 듯 의열단들의 각자 사연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는다. 김우진(공유 분)과 연계순(한지민 분)의 관계 또한 동료 이상으로 미묘하게만 표현할 뿐 굳이 사랑의 감정을 집어넣지 않았다. 장르에만 집중하겠단 의미이다. 이번 '밀정' 또한 그의 필모그래피를 화려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 본다. 그저 역사적 비극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시대극의 통속을 벗어난 '밀정'이 새로운 장르의 획을 그었으면 한다.

감정의 절제미를 갖춘 영화

'밀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절제'이다. 역사적 비극을 그린 작품이기에 관객 또한 굉장히 불편한 장면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인지 미리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밀정'은 그러한 인물들의 감정을 관객에게 호소하진 않는다. 소위 그 시절의 아픔을 감정 이입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 비교적 거리를 두고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조선인 일본 경찰인 이정출(송강호 분)의 인간적인 고뇌조차 복잡한 심리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무겁지 않게 다루려 노력했다. 자칫하면 굉장히 콜드해 보일 수 있는 이정출의 심리변화를 송강호의 입체적인 감정 표현을 통해 심도 있게 풀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연계순이 일본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이다. 연계순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던 김우진이 주변 동료들에게 잡혀 격양된 감정을 추스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연계순을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인해 붉게 핏줄 선 두 눈이 굳이 비통함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아도 절실히 느껴졌다.

함께 술을 마시며 느끼는 동질감

영화 중반부에서 친일 이정출을 오히려 스파이로 만들려 한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의 독보적 존재감이란. 카메오로 출연했지만,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정채산과 김우진. 그리고 이정출이 함께 한자리에 모인 장면은 '밀정'에서 가장 유쾌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정출이 이미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정채산을 미리 예견한 듯 함께 한 자리를 만들었다. 머나먼 상해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 김치와 밥, 그리고 술까지. 같은 한국 음식을 함께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들은 한민족이다. 굳이 이정출을 의열단을 돕게 하려고 지지부진하게 말로 설득할 필요 없다. 예부터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은 '함께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정의한다. 그들이 같은 조직에 뜻을 같이 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단지 이 장면 하나만으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엄태구

'밀정'의 인물들을 연기한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배우를 만났다. 이정출과 함께 의열단의 뒤를 쫓는 일본 경찰 하시모토(엄태구 분). 송강호와 대립하는 엄태구가 야욕에 눈이 먼 일본 경찰 하시모토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날 선 턱선이 더욱 그를 냉혈하게 보이도록 했으며 부하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선 지독히 잔인한 모습을 보였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였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충무로에서 그를 보는 시선은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괜찮은 배우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영화는 언제나 반갑다.

핵심 여성 단원 연계순의 캐릭터 설정

'밀정'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일한 여성 연계순의 캐릭터 설정이다. 영화 '암살'과는 다르게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이 다른 남성 캐릭터들에 비해 다소 묻히는 느낌이 든다. 곧고 단단한 강단을 지닌 캐릭터라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에겐 담대함보단 곱고 여린 분위기가 더 보인다. 실제로 여성 의열단 단원이 있다면 한지민 같은 분위기보단 정말 남자보다 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남자들이 중심이 된 영화라서 그렇긴 했겠지만, 여성 단원에 대한 설정이 다소 어색하게 다가왔다.

김서해 free7069@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