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적' 이성민 "다시 돌아가면 배우 안 할 것"
[인터뷰] '기적' 이성민 "다시 돌아가면 배우 안 할 것"
  • 정다연 기자
  • 승인 2021.10.26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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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되겠다는 꿈, 선생님은 무시하셨고 아버지는 원서 찢었다"
"연기 길만 걸어왔기에 내 아이는 다양한 길 두드렸으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적’(이장훈 감독)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인 정준경(박정민)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작이다.
 
이성민은 극중 원칙주의 기관사이자 준경의 아버지 태윤 역을 맡아 간이역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아들 준경에게 “기차역은 어림없다”며 단호하게 다그치는 무뚝뚝한 아버지이다. 영화 속 장소는 실제 배우 이성민의 고향이기도 했고 이성민 역시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태윤에게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뭣 모르고 시나리오를 펼쳤던 이성민은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기적’과 그 당시 추억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이하 이성민 인터뷰 일문일답
 
 
Q.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근래 센 영화들이 많이 개봉했는데 그런 와중에 따듯한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저희 나이대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보셨으면 좋겠고, 아이들도 보면서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사실 촬영장이 힘들었어요. 배우들끼리는 좋았지만 시간상으로도 힘든 촬영이었죠. 그럼에도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은 감독의 기적이라 생각해요.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었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배우들도 각자의 역할을 잘 해줬죠”
 
 

Q. 이 감독은 이성민 배우가 봉화 출신인 줄 모르고 캐스팅 했는데, 고향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나
 
“어유 허걱했죠. 자세를 고쳐잡고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나요. 대본 속 첫 사투리가 제가 살던 동네의 사투리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읽어가면서 제가 자라온 환경과 비교했던 기억이 있어요. 반가웠습니다”
 

 
Q. 실제 고향이었다 보니 촬영장 세팅에도 조언한 것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제가 살았던 그 당시 상황에 제가 너무 이입되면 영화 제작에 혼선이 있을 것 같아서 추가적인 이야기는 따로 안 했어요. 그저 동네의 규모와 사투리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Q. 실제 기관사가 꿈이었다고 들었는데 캐릭터를 통해 직접 만나보니 느낌이 어땠나
 
“확실한 꿈은 아니었지만 늘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기찻길과 친했었기에 학교 갈 때 철길로 많이 다니기도 했고, 멀리 갈 수 있는 기관사가 부러웠죠. 영화 속에 나오는 역 구간을 실제로 운전하는 친구가 있어요. 기차 사고가 꽤 많이 난다고 하는데, 그 구간을 지날 때마다 사고가 났던 당시 기억이 많이 나 트라우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태윤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태윤은 따듯한 속내를 쉽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네 아버지상을 잘 보여주는데실제 이성민은 어떤 아버지인가
 
“제 아버지도 무뚝뚝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표현을 조금은 하신 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좀 더 많이 표현하는 아버지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 생각일 수 있지만, 친구같은 아버지이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지금도 딸에게 ‘나 같은 애비가 어디있냐’며 가끔 물어보는데, 딸도 ‘자기 친구들 아버지보단 조금 다른 아버지’라면서 어느 부분은 인정해주더라고요”
 
 

Q. 태윤 역을 맡으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과 비슷한 지점은?
 
“연기는 어떤 역이든 늘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태윤은 저와 비슷한 면도 있고 고향말도 써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넘게 흘렀기 때문에 저 역시 사투리를 신경 쓰면서 연기했죠. 비슷한 지점은 무뚝뚝한 면인 것 같아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예전에는 친구들에게 ‘숨 막혀 죽겠다’ ‘화난 거 아니냐’ 등의 말을 많이 들었었죠. 필요하지 않은 말은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Q. 연기하면서 가장 뭉클하고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어디였나
 
“준경이와 아버지가 서로의 속내를 이야기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은 안 했지만 모든 배우들이 어려워한 씬이었고, 박정민 배우도 저도 그 외에 몇몇 장면들까지도 ‘이 씬을 촬영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기까지 했었으니까요”
 

 
Q. 박정민은 이성민 배우를 진짜 아버지처럼 느끼면서 연기했다고 했는데이성민은 박정민 배우와의 호흡이 어땠나
 
“아주 훌륭했고 좋았어요.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박정민의 연기는 흰 쌀밥이에요. 맑고 순수하고 꾸미지 않은 그러면서도 에너지를 유지해나가는 배우죠. 늘 같이 연기할 때 기대되고 집중하게 만드는 배우에요. 앞으로도 그렇게 나갈 것 같고 결국엔 최고의 배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Q. 만약 실제 자녀가 준경이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려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어릴 때 영화를 좋아하고 배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쑥스러움이 많아서 제 어머니께서 ‘말도 못하는 애가 뭔 배우를 하나’라고 하셨었어요. 만약 다시 그 길을 돌아간다면 배우는 안 할 것 같아요. 힘들지는 않은데 너무 막연해서 제가 갔던 길을 우리 애는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제 아내도 무용을 하는데, 자식이 유연해도 무용은 안 시킬 거라고 하더라고요. 부모의 마음은 안정된 길을 가길 바랄 수 있지만, 인생은 기니까 다양한 것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꿈이 빨리 정해지는 것도 멋있는데 저는 배우라는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저희 아이에게는 다양한 길을 두드려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Q.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가장 이성민에게 가장 기적 같았던 순간은 언제였나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했었을 때요. 제가 일방적으로 원서를 썼었고 엄마는 관심이 없으셨어요. 혼자 원서를 쓰고 집에 있는 도장도 제가 셀프로 찍어서 선생님께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무시하셨어요. 아버지께서도 재수를 하라며 원서를 찢어버리셨고요. 재수 시절 영주 내 철쭉 축제를 갔다 버스 종점에서 내렸는데 연극 단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가 있더라고요. 그 작은 동네에 단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당장 전화번호를 적어서 고민 끝에 전화를 했더니 관계자 분이 너무 밝게 전화를 받아주시더라고요. 그때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순간이에요. 그 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운명같은 순간이에요”
 
 
 
Q. 꿈꾸는 이들에게 꿈을 이룬 배우 이성민이 보내는 가장 현실적인 충고는?
 
“연극배우 시절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한 관객이 ‘배우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했었어요. ‘연기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때 도전하라’라고 해서 당시에 아이들이 조금 서운해 했었죠. 저도 살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어릴 땐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주변의 반대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른 것을 하고 싶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에 재미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생은 기니까 차근차근 즐기다 보면 꿈을 이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 좋은 선배를 만나야 돼요.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이들을 만나야 되는 게 가장 중요해요”
 
 
 
Q. 그렇다면 이성민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힘이 되어준 좋은 선배와 좋은 동료는 누구인가
 
“크게 꼽으면 저야 말로 준경 캐릭터 같아요. 대구에서 오신 연극 연출가가 저를 데리고 서울로 갔어요. 그 분은 제게 가장 큰 선생님이시고 대구에서 연기할 때 제 연기관과 맞는 훌륭한 선생님이셨죠. 대구에 같이 있었던 단원들과 동료들도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배우로서 존재하지 않나 싶어요. 조언과 충고, 그리고 가르침이 쌓여서 이렇게 연기하고 사는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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