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기획] 한국영화 秘史를 파헤치다, 시리즈④
[SF+기획] 한국영화 秘史를 파헤치다, 시리즈④
  • 김주영 기자
  • 승인 2021.02.0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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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열차>(서광제, 1938)
<집 없는 천사>(최인규, 1941)

국군주의의 강화-국책영화의 제작

1937년 중일전쟁 직후부터 일제는 전시체제에 들어가면서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국민에게 가장 유입하기 쉬운 ‘대중문화’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고, 국책영화의 제작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다.

일제의 ‘조선영화령’ 제정과 ‘신체제’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대중문화’의 장악력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법(法)’제정을 택했다. 일본은 1939년 4월 ‘영화법’을 공포했으며, 이 법률은 1940년 8월, ‘조선영화령’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들이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게 만들었다.

일본이 만들어놓은 ‘영화 신체제’는 전시체제 하 일본과 조선 영화 산업 구조를 효율적으로 재편하기위해 정책, 법률과 개혁을 포괄하고 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국군주의를 강화하면서 ‘국가총동원법’(1938)을 제정해 황국신민서사, 일장기, 전쟁 표어 등을 극장에서 강제 상영하도록 했다. 

1940년 9월,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조영)’가 발족하면서 ‘영화 신체제’는 더욱 빠르게 조선 영화계에 퍼져나갔다. 이윽고 1941년 1월부터 조선어로 된 발성영화의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제작‧배급의 국유화가 이루어졌다. 

거슬러 올라가 1938년부터 친일 협력 영화와 군국주의 선정영화가 제작되었다. 그 시발점인 <군용열차>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내포적으로 주장하는 영화로서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와 협력 관계를 이루었다. 이후 속속들이 발굴된 <반도의 봄>, <집 없는 천사>, <지원병>, <조선해협> 등은 일본 영화사들과 제휴한 작품이 많았고 일제가 조선인을 교육하고 만주 등에 조선의 사정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특히 <집 없는 천사>는 일본 문부성 추천 영화로 결정되었으나 조선어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추천이 취소된 사례를 보면, 당시 조선 영화계가 일제에 탄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일제 말기 조선 영화는 일제의 지배가 강압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토착사회 내부의 자발적인 협력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조선인에게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는 현실적, 논리적으로 모순이며 불가능한 것이라는 균열과 차이를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4選(1934~1941년) 영화학자와 평론가가 진행한 수십 년의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에 다시 빛을 발한 당대의 영화를 소개한다.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1934)

Point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극영화다. 2007년에 발굴 되었으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로는 처음이었고 질산염 필름도 처음이었다. 당대의 한국영화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희귀성이 돋보이는 영화.
Synopsis
성품이 우직하고 착한 주인공 영복은 봉선네 집 데릴사위로 들어가 7년 동안 일을 했으나 주명구에게 봉선을 빼앗기게 되자, 늙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긴 채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 뒤 고향에 남아 있던 영복의 여동생 영옥마저 어머니가 죽자 서울로 올라온다. 오빠를 찾아 넓은 도시 바닥을 헤매다가 구한 일자리가 카페의 여급. 영옥은 같은 시골에서 올라온 명구의 술책에 넘어가 그의 친구인 장개철에게 몸을 더럽히게 된다. 철도국 소속 수하물 운반원이 된 영복은 주유소에서 급유 일을 하는 계순과 사귄다. 그러나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처지로 빚에 시달리던 계순은 부잣집 아들 개철에게 농락당하는 신세가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복은 개철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뜻밖에도 여동생을 만나게 되고 자연히 개철과의 관계도 알게 된다. 여동생을 괴롭히고 애인마저 넘보는 이 사내에게 분노한 영복은 마침내 주연을 베풀고 있는 개철 일당을 찾아가 참고 있던 분노의 주먹을 휘두른다. 평정심을 찾은 영복은 영옥의 축복을 받으며 계순과 새 출발을 다짐한다.
expert comment
1930년대의 서울 풍경과 문명을 엿볼 수 있어 이채로운 영화. 다양한 신에서 어색한 대목이 눈에 띄고 편집상의 문제도 노출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늘의 시점보다는 80여 년 전 상영 당시의 완전한 상태와 잣대에 맞춰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김종원 l 영화평론가(『한국영화100선』26페이지)

<box> 35mm, 흑백, 스탠다드, 무성영화
제작사 금강키네마
기획 이원용
감독 안종화

아리랑 3편(1935)

Point
영화 <아리랑>은 문화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충격을 던진 일대 사건이었다.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해 5일간 상영되었으며 연일 만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될 <아리랑> 신화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1938년까지 <아리랑>은 경성에서만 18차례나 재상영 되었고 지방에서는 1950년대 초까지도 계속 상영되었다. 
Synopsis
소작인의 아들로 미치광이가 될 영진은 악덕 지주 집안의 청지기 오기호만 보면 으르렁거린다. 어느날 영진의 친구 현구가 마을을 찾아오고 영진의 동생 영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평소에 영희를 탐내던 오기호는 영희를 겁탈하려다가 현구와 싸움을 벌인다.
이때 마침 집으로 돌아온 영진은 현구와 오기호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환상에 사로잡혀 낫을 휘두르는데, 그 낫에 오기호가 쓰러진다. 피를 보고 정신을 되찾았지만 영진은 이미 살인범이 되었다. 영진은 일본 순사의 손에 이끌려 아리랑고개를 넘고 마을 사람들은 영진이 즐겨 부르던 아리랑을 부르며 전송한다.
expert comment
일제의 검열을 피해 나운규가 몇 겹으로 걸쳐 놓은 영화 속 우의법은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더욱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그 응축된 감정이 <아리랑>의 주제가 『신아리랑』을 통해 분출됐다. “아마 그 시절에 <아리랑>을 못본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아리랑>의 내용은 다 알고 있었다.” -안동수 (「영화수감」, 「영화연극」 1호, 1939년 11월)

<box> 35mm, 흑백, 스탠다드
제작사 조선영화주식회사 경성촬영소
제작 와케지마 슈지로
감독 나운규

미몽(1936)

Point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발성영화다. 2005년에 발굴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영화의 생생한 모습을 가늠케 해주는 영화. 식민지적 근대화의 도시 풍경과 신여성에 주목하는 멜로드라마로 주인공 여성의 극단적 탈주와 처벌 받는 신을 통해 신여성을 ‘위험한 여성’으로 표현하는 영화
Synopsis
애순은 여염집의 부인으로 허영이 심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참다못한 남편은 애순을 내쫓고, 애순은 남편과 딸 정희를 버려둔 채 정부 창건과 함께 호텔에서 지낸다. 어느 날 애순은 창건이 돈 많은 유지가 아니라 가난한 하숙생이자 범죄자임을 알게 된다. 창건 일당은 호텔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고, 이를 눈치 챈 애순은 창건을 경찰에 신고한다. 공연에서 본 무용가에게 관심을 보였던 애순은 그를 쫓아 택시를 타고 떠난다. 무용가가 탄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순이 탄 택시는 과속을 하고, 때마침 길을 건너던 딸 정희를 친다. 병원에 간 정희는 무사히 깨어나지만 애순은 죄책감에 약을 먹고 자살한다.
expert comment
애순이라는 인물 해석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욕망과 절망의 극과 극에서 방탕과 교만, 봉건적 도덕률을 벗어나려는 여성의 갈증을 예리하고 강렬하게 연기한 문예봉의 존재는 당대 여배우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지나 l 영화평론가, 동국대학교 교수 (『한국영화100선』28페이지)

<box> 35mm, 흑백, 스탠다드
제작사 조선영화주식회사 경성촬영소
제작 와케지마 슈지로
감독 안종화

집없는 천사(1941)

Point
한국 근대사의 모순이 중첩되어 있는 영화로, 한국영화사에서 오랫동안 리얼리즘적 관점으로 사회 문제를 조명한 수작이다. 스튜디오가 없어 길거리에서 촬영했기에 다큐멘터리와 같은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Synopsis
명자와 용길은 남매 사이로 어릴 적 부랑자들에게 팔려 앵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용길은 부랑자들로부터 도망쳐 고아들 사이에서 지낸다. 고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용길을 본 방성빈은 용길을 집에 데리고 온다. 그의 집에는 고아들 네다섯 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고아들을 위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성빈은 처남이자 의사인 안인규의 도움을 받아 고아원을 지을 땅을 구하고, 향린원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고아원 사업을 시작한다. 한편 안인규는 우연히 만난 명자를 부랑자들 사이에서 구해 자신의 간호사로 일하게 한다.
향린원의 아이들 중 영팔과 화삼은 그곳 생활에 불만을 품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를 말리던 용길이 범람하는 강물에 빠져 빈사상태에 빠진다. 영팔은 용길의 치료를 위해 강을 건너 안인규와 간호사 명자를 향린원으로 데려온다. 결국 남매의 감격적인 해후가 이루어지고 용길은 살아난다. 하지만 이때 용길과 명자를 쫓던 부랑자들이 향린원에 나타난다. 향린원의 모든 디릉리 힘을 합쳐 이들을 내쫓고, 이들은 모두 일장기 아래 모여 황국신민으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expert comment
마치 나치즘의 끔찍한 대의명분을 대변하면서도 영상미의 향연을 보여주었던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처럼 <집없는 천사>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와 예술미가 한 작품 안에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김려실 l 부산대학교 교수 (『한국영화100선』30페이지)

<box> 35mm, 흑백, 스탠다드
제작사 고려영화협회
제작 이창용
감독 최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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