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기발랄, 청춘! '노가리' 박민국 감독
[인터뷰] 재기발랄, 청춘! '노가리' 박민국 감독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0.04.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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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힘내라는 말보단 곱창 사줄까?’ 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지 않나요”  박민국 감독의 철학은 그의 영화와 똑 닮아있다. 쿨하고 담백하지만 오히려 마음을 더 묵직하게 울린다.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흔한 겉치레 인사를 건네기보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 유쾌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영화 한 편을 선사하는 것. 이는 대한민국의 청춘이자 영화인으로서 박민국 감독이 추구하는 길이다.
 
시원하게 까발렸다고 말하고는 허허 웃는다. 박민국 감독은 투자사기를 당했던 실화를 영화 <노가리> 안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잊고 싶은 흑역사로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박민국 감독은 사건의 전말을 화끈하게 전시했다. 이런 재기발랄함이 박민국 감독의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5년 <녹화중이야>에 이어 2번째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은 <노가리>. 국내 정식개봉을 앞두고 후반 작업에 한창 중인 박민국 감독을 만났다.
 

사진 = 양언의 기자

<노가리>, 녹록치 않아도 괜찮아!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9)처럼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청춘들에게 뜻밖의 100억 투자 제안이 들어온다. 꺼림칙하지만 단칼에 잘라내기엔 너무 달콤한 유혹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영화사 노가리필름은 ‘못 먹어도 일단 고!(GO)’를 외친다. 영화 <노가리>의 발단이다. 박민국 감독은 “한참 전쟁영화를 찍고 싶었을 땐데 100억을 투자하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사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한테 뭘 뜯어먹을 게 있다고 사기를 치겠어?’라는 마음으로 만나러 갔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명품으로 휘두른 멀끔한 중년 남성은 정식으로 투자를 제안하면서 ‘마음대로 영화를 만들라’는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다. 박민국 감독 또한 배우 기획사, 제작사와 접촉해 발 빠르게 작업을 진행했다.
 
“일사천리로 흐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투자자가 사라진 거예요. 사실 금전적으로는 크게 손해 본 건 없는데 저를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 PD들이 걱정이었어요. 간혹 사기를 치고 다니는 감독들도 있으니 나도 그런 이미지로 못 박히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있는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그럼 날 용서해주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노가리>를 찍었어요.(웃음) 다행히 다들 보고 웃더라고요. 그때 많이 배웠어요. 쉽게 누굴 믿으면 안 되겠다 싶었죠.”

 

‘실패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건 도전도 하지 않았다는 것.’ 박민국 감독은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가리> 안에는 교훈도 극복의 메시지도 없지만 누군가를 위한 위로가 담겼다고 말한다. 그는 “엔딩 크레디트에 ‘꿈꾸는 모든 가난한 청춘과 예술가들을 위하여’라는 말이 나와요. 관객들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더 힘든 애들도 있구나, 얘네 진짜 불쌍하다’라고 공감하고 이해해주길 바라요. ‘너도 힘드니? 그래, 나도 힘들어. 같이 파이팅 해보자!’ 라는 의미요”라고 전했다.
 
투자사기라는 뼈아픈 경험을 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도 있었다. <노가리>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부문에 초청돼 개봉 전 관객들을 만났다. 2015년 <녹화중이야>를 통해 최연소 감독으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후 2번째 이룬 성과다. 박민국 감독은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을 비롯해 영화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을 회상하며 “처음 초청됐을 때가 2015년이고 24살 때였어요. 벌써 5년차가 됐는데도 감독 중에선 많이 어린 편이죠. 영화제에 워낙 좋은 선배님, 영화인들이 계시니까 많이 배우려고 해요”라고 털어놨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현장은 늘 즐겁게박민국 감독의 뚝심
 
박민국 감독은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극단에 출입하며 경험치를 쌓아왔다. 뮤지컬 안무가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극단에 찾아가 맨몸으로 부딪힌 적도 있었다. 박민국 감독은 “어릴 땐 소위 말해 돼지였어요. 살집이 좀 있었죠. 극단에 찾아가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더니 먼저 연기를 배워야한다면서 연기를 하려면 살부터 빼고 오라더라고요. 방학 때 두 달간 브로콜리에 물만 먹으면서 10kg이상을 감량했어요. 그랬더니 극단에서 ‘넌 뭘 해도 되겠다’면서 절 받아주셨죠”라고 털어놨다.
 
고등학생 땐 청소년연극대회에서 입상도 했단다. 어릴 때부터 탄탄하게 이력을 쌓아왔지만 대학시절에 뜻밖의 암초를 만나기도 했다. 개개인의 실력과 개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선후배 위계문화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박민국 감독은 “1학년 때 선배들 몰래 연극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부산국제연극제에 초청도 받았는데 당시 선배들에게 혼나고 맞기만 했어요. 결국 저 포함 동아리 멤버들이 다 같이 자퇴를 했어요. 그 동아리 이름이 노가리였어요”라고 말했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쉽지 않은 여정들이었다. 하지만 박민국 감독은 신인감독들이 으레 겪는 금전적 고충을 당연히 감내해야할 몫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실 저는 부유하게 자랐고 가난함을 겪어본 적이 없어요. 반면에 주변엔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들과 어울리려면 저 또한 힘들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막노동을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힘든 걸 즐길 줄 알고 꼬질꼬질하게 다니면서 영화를 찍는 게 영화인다운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상황을 즐기다보니 현장이 유쾌해졌고 유쾌한 현장을 만들어야 좋은 영화도 탄생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됐다고.
 
영화 현장이 즐거워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제 현장에는 큰 소리가 오갈 일이 없어요막내 스태프들과도 장난치고 같이 술 마시고 놀아요그런 현장에서 탄생한 게 <녹화중이야>, <노가리>인데 가장 저다운 영화인 것 같아요독재를 하면서 부유국을 만드는 건 쉽지만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좋은 나라를 만드는 건 힘들죠어렵더라도 이왕이면 모두가 행복한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면 좋잖아요배우스태프들이랑 대치하고 싶지는 않아요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아직 어린 감독이라고 쉽게 여길 수 있지만 박민국 감독은 숱한 경험을 토대로 확고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또한 영화제 출품작 2편을 보유한 전도유망한 감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임감도 따른다. 열정 넘치는 영화학도였을 때와는 분명 달라진 지점도 있다. 박민국 감독은 “아직 성공에 대해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영화를 찍고 싶은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일단 영화를 찍어보라고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면 영화를 찍어야하고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야죠. 무조건 많이 망쳐봐야 해요.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랬고요”라며 웃었다.
 

 

자퇴 후 박민국 감독을 포함한 노가리 팀은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돌입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영상 촬영, 편집을 독학했고 전체회의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박민국 감독은 “저희끼리 투자금을 모아서 <지평선 끝에 서다>라는 로드무비를 만들었어요. 처음이라 형편없었죠. 이 영화는 쓸 수 없으니 우리끼리의 추억으로 기록해두자고 결정했었어요.(웃음) 대신 많이 배웠어요. 그 이후 <녹화중이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게 됐어요”라고 회상했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나는 나답게’ 내 길을 갈뿐
 
모든 영화인들에게 영화란 삶의 동력이자 원천일 것이다. 나아가 박민국 감독에게는 인생을 바꿔준 터닝 포인트이기도 하다.
“어릴 때 뚱뚱해서 여자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어요. 방학 때는 틀어박혀서 영화만 봤던 것 같아요. 멜로영화 보면서 간접 연애도 했죠.(웃음) 그러면서 영화인만큼 멋진 직업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영화를 하면서 살도 많이 뺐고 말을 더 재미있게 하는 방법도 터득했어요. 꿈꾸던 연애도 할 수 있게 됐고 인기도 많이 얻었어요. 영화가 제 인상 자체를 바꿔놓은 거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멋을 직접 체감한 적도 많고 그들처럼 예술을 오래 하려면 나쁜 짓 말고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돼요.”
 
박민국 감독은 영화에 대한 어떤 칭찬보다 ‘잘생겼다’는 말이 가장 기분 좋단다. GV가 끝나면 문 앞에 서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거나 먼저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한다고. 단순히 외모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 겉멋에 취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다. 겉과 속이 한결같이 멋진 영화인, 이는 박민국 감독이 원하는 이상향의 길이다.
 
“평소에도 잘 꾸미고 다니는 편이에요. 누구를 만나든 항상 자신감 있게 보이고 싶어요. 가끔씩 ‘감독이 왜 이러고 다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꾸밀 줄 아는 영화인이 영화까지 잘 찍으면 최고 아닌가요? 저는 이런 문화들이 계속 자리를 잡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든 젊은 사람들은 계속 자신을 표출해야 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늘 정장 차림을 현장에 가는데 불편한 옷을 입고 긴장한 상태로 있어야 자신의 영화에 예우를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잘 꾸민다고 뺀질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영화도 잘 만드네? 타투했는데 예의 바르고 성실하네? 하는 인식의 변화가 중요한 거예요. 기성세대들이 인식을 바꿀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바뀌도록 해나가야 하는 거죠.”
 
이러한 건강한 멘탈을 구축하기까지 부침도 있었다. 박민국 감독은 지난 해 잠시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내 인생에 영화를 빼면 남는 게 없다는 허탈함이 밀려오더라고요. 우울감에 젖어 있다가 이제는 나에게 선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싼 옷을 사보고 좋은 차도 타보고 힐링하는 시간도 가졌죠. 나를 사랑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영화도 있는 거잖아요. 다행이 지금은 고민이 많이 사라졌어요”라고 털어놨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상념과 고민은 지우고 하루하루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5년 뒤 계획에 대해 묻자 “5개월 뒤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라며 웃고 만다. ‘퇴근해서 마카롱 하나 먹기’ 같은 사소한 것들을 시작으로 하루 목표를 빼곡하게 정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박민국 감독은 “하루를 완벽하게 살고 싶어요. 28살이라 남은 20대를 후회 없이 보내고 싶어요. 일을 빨리 시작한 편이라 많이 놀고 싶고 다가오는 여름을 위해 운동도 하고 싶고요. 작성 중인 시나리오도 많고 영화 개봉까지 해야 할 일도 많죠. 그렇게 일주일을 살았을 때 ‘즐거웠다’는 생각을 하고 싶어요. 단기적인 계획들이 더 만족감이 높은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가슴 속에 품은 영화인으로서의 목표는 한결같고 굳건하다고 털어놨다.
 

“<녹화중이야> 당시 24살 때 한 인터뷰에서 ‘내 영화로 세상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변함없어요. 영화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지치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들어나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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