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기획] 반란과 신드롬 사이, 2020년 트로트가 살아남는 법
[SF+기획] 반란과 신드롬 사이, 2020년 트로트가 살아남는 법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0.03.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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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그야말로 트로트 열풍이다. 트로트의 향유층이라 볼 수 없는 10대~40대 젊은이들이 붐을 이끌고 4050 중장년층 팬덤은 ‘덕질’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예능판은 트로트로 싹 물갈이 되고 있다. 누구도 쉬이 예상치 못한 복병, 트로트.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매력을 낱낱이 파헤쳤다.

디자인=김주영
디자인=김주영

트로트의 사전적 의미는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대중가요의 한 장르’로 trot(트롯)은 ‘빠르게 걷다’의 의미를 담는다. 한국에 트로트가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 1960~1970년대에 이르면서 지금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한국식 트로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오랜 시간 비주류 음악으로 분류돼왔다. 2000년대 초중반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등 젊은 가수들의 활약으로 잠시 활기를 띄었으나 영향력이 오래가진 않았다. 이 가운데 TV조선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등장했다.

 

드디어 깨진 트로트 고정관념
 
<미스터트롯>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 1위(한국갤럽 2월 집계)에 오른 데에 이어 순간 최고시청률 33.7%(9화, 닐슨코리아 전국기준)까지 기록했다.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래 처음 이뤄진 대업적이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이 예견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 해 TV조선에서 <미스트롯>을 론칭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업계의 반응은 대부분 심드렁했다. 지상파를 비롯한 TV매체에 대한 관심이 각종 OTT 플랫폼으로 옮겨간 지 오래고 다수의 시청자들이 오디션 및 서바이벌 프로그램 포맷에 피로감을 토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스트롯>에 이어 <미스터트롯>은 모든 고정관념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기존의 트로트 프로그램이 오직 기성가수들의 무대에 집중해왔던 것과 달리 <쇼미더머니>, <프로듀스101> 등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차용한 것. 트로트에 경연과 경쟁 구도를 붙이자 시청자들은 꿈틀 반응했다. 트로트와 서바이벌 모두 대중들에게 익숙한 예능 아이템이지만 이 둘을 조합할 생각을 쉬이 한 이들은 없었다. 흔하면서도 흔치않은, 독보적인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만의 매력이 탄생한 셈이다.

 

악마의 편집, 그게 뭔가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으레 열병처럼 겪는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강점이다. 방송 초반 <미스트롯>의 지원자들의 성상품화와 전시가 질타를 받았고 <미스터트롯> 또한 노출과 관련해 쓴 소리를 들었지만 다른 예능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임영웅의 후원계좌 논란도 본인 해명 후 빠르게 종식됐다. 제작진은 오히려 노이즈마케팅에 촉각을 세웠다. 방송가 관행어로 굳어진 예능 속 ‘악마의 편집’과는 다른 노선을 타겠다는 결단마저 느껴졌다.

단기 화제성을 높이기에 가장 편리한 지원자들의 ‘사연팔이’도 <미스터트롯>에선 찾기 어렵다. 임영웅, 양지원, 정동원 등의 안타까운 개인사가 공개되기도 했으나 제작진이 우선적으로 포커스를 둔 건 그들의 실력이다. 사연의 개입이 자칫 팬 순위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시간 30분, 최대 3시간까지 이어지는 편성 시간 동안 무대와는 상관없는 사족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지원자들의 노래와 선의의 경쟁에만 집중해 시청자들의 호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긴 편성이 루즈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신드롬이 다른 방송으로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추세다. 방송가는 최근 트로트를 소재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론칭 중이다. MBC <나는 트로트 가수다>, MBN <트로트퀸>, SBS <트롯신이 떴다> 등이 대표적. 하지만 이들을 쉽게 아류작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남진, 설운도, 김연자 등 기성 가수들이 세계 트로트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트롯신이 떴다>는 첫 방송에 무려 20.2%(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시청률을 기록했다. 트로트 열풍이 단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트로트가 주목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동안 소외돼 왔다는 의미다. 인기가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트로트라는 장르에 기회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다. 트로트 시장은 다시, 어쩌면 유행 이래 처음으로 활발하게 순환하기 시작했다.
 

 

이미 긁어놓은 복권? 송가인→임영웅 향한 러브콜
 
프로그램에서 얻은 인기는 곧장 가수들의 수익으로도 연결된다. 가수 송가인은 <미스트롯> 전후로 몸값이 20배나 뛰었다. 각종 축제와 행사철이면 ‘송가인 모시기’에 너도나도 경쟁이 붙는다. 장윤정, 홍진영 등 톱 가수들보다 2~3배 이상의 개런티를 받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이례적인 ‘특급대우’다. 건강식품, 화장품 등 굵직한 광고는 물론, 트로트 예능만 약 20개가량 제안을 받았다. 수더분한 성격,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맛깔나는 노래 실력까지 <미스트롯>에서 조명되면서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미스터트롯>의 기세는 ‘송가인 열풍’보다 더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서바이벌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각종 행사와 방송 섭외가 물 밀 듯 밀려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지만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를 원하는 2~3월 지역 행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런티도 올랐다. 양지원은 “몸값이 3배 정도 올랐다”며 “<미스터트롯> 이후 확실히 알아보시는 분도 많고 행사 제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현재 소속사 없이 활동 중인 이찬원, 정동원 등 지원자를 향한 기획사의 물밑 접촉도 활발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현재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임영웅, 영탁 등 지원자들은 이미 긁어놓은 복권과 다름없다. 실력과 화제성, 두터운 팬덤까지 갖췄으니 누가 먼저 채 가느냐를 두고 방송가와 업계의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한 관계자는 “프로그램 종영 이후 <미스트트롯> 출신들 모시기 경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로트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 4050
 
트로트 연령대가 이렇게 다양했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10대~30대 젊은 팬들이 집결했고 4050 세대가 새롭게 ‘덕질’의 세계로 본격 뛰어들었다. 이쯤 되면 세대 대통합이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미스터트롯>의 투표 방식 덕분에 부모자식 세대의 뜻밖의 교류가 형성되기도 하는 분위기다. 젊은 세대들에게 트로트는 더 이상 ‘뽕짝’이 아니다. 함께 노래를 듣고 느끼는 세대 간 공감과 이해가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다. 예상 밖 순기능이다.

전 연령에 걸쳐 아이돌 팬덤 남부럽지 않은 집단적, 조직적 움직임도 포착된다. 이들은 가수의 출‧퇴근길을 함께 하고 직접 제작한 응원봉, 현수막, 단체복 등 굿즈를 대동한 채 현장에서 전폭적인 서포트를 한다. 송가인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팬들이 미리 사전답사를 통해 행사장 동선을 알려준다”고 밝힌 바 있다. 생소하고 값비싼 보양식을 직접 싸들고 온다거나 팬 개인이 고가의 지하철 광고를 덜컥 내거는 사례들도 크게 화제를 모았다.
행동력과 구매력, 사회적 지위를 갖춘 4050 팬덤이 전방위로 나서며 통 큰 서포트를 이어나가고 있다면 어린 팬덤은 투표, 영상 및 음원 스트리밍 등 뉴미디어를 주도하고 있다. 1020 커뮤니티에도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의 실력과 외모를 자랑하는 ‘입덕 영업글’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웬만한 소속사 못잖은 최고의 홍보 방식이 팬덤 커넥션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트로트에 대한 수요는 절정에 달했고 최고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팬덤은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지지할 준비를 마쳤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과연 얼마나 높게, 멀리 비상할 것인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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