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푸라기' 정우성 “각인된 이미지, 늘 깨고 싶었죠”
[인터뷰] '지푸라기' 정우성 “각인된 이미지, 늘 깨고 싶었죠”
  • 이수민
  • 승인 2020.02.14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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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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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이 달라졌다. 데뷔 이래, 소위 말해 비수기 없는 외모로 늘 ‘잘생김을 연기’했던 그가 이번 신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을 통해 모든 것을 내려놨다. 수려한 외모는 배우로서 큰 강점이지만, 때론 실력 평가를 절하시키는 치명타가 되기도 한다. 종종 그를 향해 ‘늘 같은 연기를 한다’는 평가가 따라붙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정우성은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지웠다. 배우 정우성이 아닌 태영이라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혹은 ‘호구 같은’ 인물로 분해 온전한 한 사람을 보이게 했다. 데뷔 26년 차 임에도 끊임없이 틀을 깨고 발전을 향하는 정우성의 노련함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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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우 정우성을 만났다. 영화 <지푸라기>(감독 김용훈)는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범죄극. 정우성은 사라진 애인 연희(전도연) 때문에 사채 빛에 시달리며 한탕의 늪에 빠진 항만 공무원 태영 역을 맡았다.
 
정우성은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태영의 허점을 주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빈틈이나 허점, 그런 것들을 크게 봤어요. 태영이를 세세하게 분석 할 필요가 없는 감독님이나 제작팀은 그저 어두운 캐릭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 영화의 장르인 블랙코미디를 가장 잘 채울 수 있는 캐릭터가 태영이라고 생각했어요. 태영을 단 한 번도 무섭게 설명해본 적이 없었죠”라고 말했다.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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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영화 속 태영은 내내 이어지는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허무맹랑한 믿음을 갖는가 하면 막연한 희망을 극단적으로 신뢰하는, 어딘가 엉성한 인물처럼 보인다. 기본은 같지만 처음부터 극단적으로 호구인 캐릭터는 아니었다. 오롯이 정우성이 표현하고, 강조하고자한 캐릭터로 태영이란 인물이 최종 구축되었다.
 
“각자 생각하는 그림들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첫 촬영 때 정우성이 플레이 하는 태영을 보고 아마 감독님도 그렇고 많은 배우들이 놀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 정우성이 저래도 되나?’라는 불안함을 가졌을 것 같아요. 정우성인데 태영을 저렇게 표현해도 될까라는 충격 같은 것. 하지만 저는 그걸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었죠. 제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전체적인 틀 안에서 태영이가 어떤 흐름을 책임질 것이며, 그 부분에 대해 상상하고 스스로 균형을 조절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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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이 과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태영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그를 끝까지 신뢰하고 담아낸 김용훈 감독의 믿음도 한 몫을 했다. 정우성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고는 생각이 안 될 만큼 여유가 있는 분이셨죠. 재밌어 하시더라고요. 사실 보통 신예감독들은 자신이 전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상태에서 조금만 엇나가게 되면 당황 하게 돼요. 그래서 최종적인 출구를 찾지 못 하고 자기 고집을 내세우기도 하는데, 김 감독님은 제가 왜 태영을 그렇게 연기하는지 귀담아 듣고 바로 테이크를 가시더라고요. 나쁘지 않으니까 봐주시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태영을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김용훈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정우성은 <지푸라기>를 자신에게 ‘상징적인 의미’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늘 그에게 요구되었던, 혹은 각인 되어 있던 이미지를 깨고, 스스로도 새로운 경험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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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도연 씨와도 작업을 처음 했어요. 서로 한 업계에 있으면서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사이였죠. 긴 시간동안 이 생활을 해왔어도 함께 작품을 하지 않으면 서로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전도연 씨도 제가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캐릭터에 접근하는지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제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으니까 저에 대해 어떤 선입견이나 막연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를 가지고 현장에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감독님도 <비트>때의 저를 강하게 기억하시더라고요.(웃음) 개인적으로 바라보는 정우성과, 감독의 입장에서 캐릭터를 구현하는 배우 정우성의 모습을 구분해야 되는데, 사실 그런 부분이 마구 교차가 되면서 서로 재밌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저에게 규정된 외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그런 모습들이 이번 작품을 통해 표현된 것 같아서 저에게는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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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전도연과는 이번이 첫 만남이었다. 두 사람 모두 2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영화계에 있었지만 오며가며 얼굴만 본 사이였다. 처음으로 전도연과 현장에서 호흡을 맞추게 된 정우성은 “역시 전도연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며 극찬했다.
 
그는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태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도연이라는 이름으로 긴 시간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죠. 책임감과 동료의식이 무척 강한 사람이고 그 진면목을 확인 할 수 있었어요. 진면목을 확인시켜준 당사자에 대해 애정이 커질 수밖에 없었죠”라고 말했다. 전도연이 맡은 연희에 대해서는 “이 영화는 연희의 영화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연희의 존재감을 태영이 확인시켜주고요. 그런 부분들이 무척 좋았죠”라고 덧붙였다.
 
영화는 중만(배성우)이 일하는 사우나 라커에서 현금이 가득 채워진 돈 가방을 발견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실제로 그런 돈 가방을 목격한다면 어떨 것 같냐는 물음에 정우성은 “준비되지 않은 물질은 감당하기 힘들어요. 우리 사회가 공공연하게 인정해주는 돈이 로또(복권)인데, 그것도 당첨이 되는 순간 그 물질을 감당하지 못 해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저는 물질을 추종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라며 차분히 생각을 전했다.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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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는 대중들이 배우 정우성에게 원하는 이미지제가 원하는 자유로운 캐릭터 구현의 바람그 사이의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그 작업이 <지푸라기>에서 펼쳐졌죠.”
 
정우성이 현재 잡고 있는 ‘지푸라기’가 있을까. 그는 “잡고 있지 않아요. 아무 것도 잡고 싶지 않아요”라며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고요. 그저 신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민폐는 끼치지 않는, 함께 많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라고 말했다.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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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어떤 관객들은 메시지를 전달 받을 수도, 혹은 가벼운 웃음만을 털어 낼 수도 있다. <지푸라기>가 블랙코미디 장르로써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을 것 같냐는 물음에 정우성은 잠시 고민을 하다 곧 대답을 이었다.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은 결국 재미를 동반했다는 의미 아닐까요? 백 명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 다기 보다는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그 서로 다른 다양한 삶에 영화의 이야기를 대입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고, 본인의 삶에 있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여지와 감정을 줄 수 있는 영화는 맞는 것 같아요. 그런 교감을 많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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