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웃음 뒤 촌철살인,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인터뷰] 웃음 뒤 촌철살인,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0.02.12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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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감독, 영화 '부라더' 이후 약 3년 만에 복귀
브라질 박스오피스 1위의 화제작 리메이크
장유정 감독 "남자→여자 설정, 라미란 때문에 가능했다"
사진=양언의 기자
사진=양언의 기자

 

얄궂은 인물은 있어도 절대 악인은 없다. 이해와 수용이 가능한 장유정 감독의 세계 안에서는 그 어떤 미운 캐릭터도 결국 포용하게 된다. 그의 3번째 연출작 <정직한 후보>는 장유정 감독이 지향하는 코미디의 정수를 담았다. 웃음이 감돌 때 파고드는 촌철살인, 모두를 아우르는 찡한 감동까지, 삼각형의 균형을 탁월하게 맞출 줄 아는 사람. 장유정 감독을 만났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이 선거를 앞둔 어느 날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다. (사진=(주)NEW)
영화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이 선거를 앞둔 어느 날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다. (사진=(주)NEW)

라미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정직한 후보>
 
<정직한 후보>는 2014년 브라질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던 동명의 흥행작(O Candidato Honesto)을 리메이크했다. 당국의 정치 풍자와 ‘거짓말’이라는 소재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컬한 웃음이 핵심 포인트. 장유정 감독은 ‘거짓말을 못하게 된 정치인’이라는 원작 소재를 뿌리에 두고 한국 정서에 맞춰 A부터 Z까지 리빌딩했다. 준비 작업 중 남성정치인을 여성정치인으로 바꿔버리는 초강수를 뒀는데 이는 배우 라미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Q. 정치극이라 리메이크가 까다로웠을 것 같아요
A. 원작에서 갖고 올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적, 문화적 코드가 다르다보니까 코미디도 정치적 상황도 외국과 우리나라가 다를 수 있잖아요. 또 ‘거짓말을 못하게 됐다’는 설정 자체가 판타지다보니 다른 에피소드들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일단은 주인공이었던 남자가 여자로 바뀌었기 때문에 주변 관계들이 전부 달라졌고요. 주상숙(라미란)에게 갑자기 남편과 시댁이 생긴 거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옥희재단과 관련한 비리 스토리도 전부 새로 만든 거고요.
 
Q. 리얼리티를 신경 쓰셨다는 게 결과물에서도 보여요
A. 보궐선거를 팔로잉하며 취재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 전엔 투표권을 가진 한 시민일 뿐이었는데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본 건 또 천지 차이더라고요. 선거 사무실을 직접 찍어서 미술 감독님과 상의하고 작업했고요. 7개 당 정도를 팔로잉하면서 국무총리 보좌관, 대변인을 만나기도 했고 <100분 토론> 작가, 정치인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PD, 정치부 20년 경력 기자, 선거관리위원회 분들에게 시나리오를 수정할 때마다 계속 자문을 구했어요. 선거법 위반인지, 아닌지 영화적 설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인지를 계속 체크했죠.

 

사진=양언의 기자
사진=양언의 기자

Q. 정치 소재를 각색한다는 것에 부담은 없으셨나요?
A. 정치적 상황도 있고 또 3선 국회의원이 주인공이다 보니까 정치 소재를 함부로 쓸 수 없겠더라고요. 살면서 알게 모르게, 혹은 모르더라도 정치와 관련해 스트레스와 영향을 받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극중 1인 시위를 벌이는 아주머니에게 주상숙이 사과하는 장면에 큰 공을 들였어요. 당연히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지만 제게는 중요했어요. 위정자인 국회의원 주상숙이 자신의 과오로 인해 상처 받는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요. 카메라 앞에서 유감을 표명하는 국회의원의 정치적 액션은 자주 봐왔지만 인간대인간으로 피해자의 고통에 통감하는 장면이야말로 정직과 용기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Q. 그런 면에서 배우 라미란의 캐릭터 압착률은 100%에 가까웠죠
A. 번역본을 읽을 때부터 설정이 남자였기 때문에 그걸 여자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시나리오가 점점 완성되면서 ‘이거 연기하기 까다롭겠구나’ 싶더라고요. 의도치 않게 말은 튀어나오고 참아내려는데 그게 유치하지 않고 그 와중에 나름의 악행은 저지르는데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웃음을 유발해야하고 그러면서도 성숙되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여야하니까요. 라미란 배우가 제격이었죠. 배우에게 ‘이런 시나리오가 있는데 한 번 읽어봐 주실래요?’ 하고 먼저 말씀 드리고 여자로 전면 수정한 케이스예요.
 
Q. 그럼 라미란 배우 때문에 성별 설정이 바뀐 건가요?
A. 몇 주 동안 열심히 바꿨어요. 주인공의 아내 대신 남편과 시어머니가 생겼고 보좌관(김무열)과는 남매 케미가 형성됐고요. 생각해보니 <김종욱 찾기>도 3일 만에 썼더라고요.(웃음) 잘 되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굉장히 빠르게 변형할 수 있었어요. 그때 같이 작업했던 작가님과 아이디어를 폭발적으로 쏟아냈죠.
 
Q. 김무열의 리액션 연기도 <정직한 후보>의 웃음 포인트였어요
A. 그 친구가 쉽게 확 마음을 여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까다로운 스타일은 아니에요. 준비를 다층적으로 해 와서 현장에서도 항상 듬직했죠. 사실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는 액션이 다 똑같아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걸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하더라고요. 매번 원하는 걸 던져주니 포수 입장에선 편하죠. 그게 김무열의 강점인 것 같아요. 성실하면서도 민첩한 것.

 

사진=양언의 기자
사진=양언의 기자

“감독도 기회가 필요해요”…장유정 감독의 소신
 
<김종욱 찾기>, <부라더>, <정직한 후보>의 공통점은 모두 따뜻한 코미디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모난 캐릭터조차 사랑스럽게 매만지는 게 장유정 감독의 특기이자 장점이다. 장유정 감독은 “작품을 거듭하며 성향을 찾아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무대와 영상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경험이 풍부하지만 여전히 다듬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를 갖춰나가면서 장유정 감독의 세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었다.
 
Q. 로드 매니저부터 연출부 막내까지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고요?
A. 맞아요. 항상 같이 있던 스크립터가 예의바른 친구인데 의견 낼 땐 솔직해져요.(웃음) 연출부 막내들도 회의 때 할 얘기는 다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저는 ‘일단 하자!’ 주의예요. 투자사, 제작사에서 의견을 낼 때도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상처 받을 수도 있지만 일단 수용해요. 정 의견 조율이 안 날 땐 투표로 결정하기도 했어요. 현장에서의 지위와 상관없이 동일한 1표씩을 행사하는 거죠. 저는 균형 감각을 갖고 그 얘기를 듣는 거고요.
 
Q. 그게 원래 감독님 스타일인가요?
A.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아요. 공연도 하고 영화도 하고 메가 이벤트도 하다보면 이 일을 먼저 시작한 사람들의 노하우라는 게 있잖아요. 그 안에서 제가 경험이 쌓이면 또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제가 예술영화를 하는 건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감독이 피곤하긴 해도 잘 잡아가는 거죠.

 

사진=양언의 기자
사진=양언의 기자

Q. 감독님의 평소 작업스타일이 궁금해지는데요?
A. 가끔 주변에 ‘시나리오 까임권’ 같은 것을 뿌리기도 해요. 10개씩 깔 것들을 정해오면 ‘커피 사드려요, 커피 쿠폰 드려요~’ 라고 영업하죠.(웃음) 내가 쓴 글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괜찮아, 좋아’라고 말할 때도 있고요. 사실 서로 논쟁을 한다는 건 피곤하고 두려운 일이에요. 내가 이렇게 시간을 투자할 만큼 이것이 소중한 일인가? 혹은 이 캐스팅이나 이 장면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 돌다리를 두드려보는 거죠. 그래서 공통적으로 지적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사실 매순간 에너지가 소모되니 쉬운 일은 아니에요.
 
Q. 감독님의 이상향이나 목표치가 있을까요?
A. 멋지게 얘기하고 싶은데 사실 인생이 제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웃음) 인생에는 고락이 있기 때문에 빅 피처를 그리는 건 쉽지 않아요. 10년 후에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좋겠고 연출 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게을러지지 않도록 다른 것들을 시도하는 것 같아요. 사실 배우들만 기회를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감독도 여러가지가 잘 맞아야 할 수 있는 거고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기회인 것 같아요. 마치 영감의 요정이 예쁜 머플러를 휘날리면서 갈 때 그걸 운 좋게 잡는 순간이랄까요. 내가 너무 바쁘고 딴 생각에 미쳐있거나 우울감에 빠져있으면 모르고 지나칠 텐데 어느 햇빛 좋은 이런 날 잡히기도 하니까요. 이게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에 더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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