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또 다시 발휘된 이병헌의 진가
[인터뷰] 또 다시 발휘된 이병헌의 진가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0.01.21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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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쇼박스
사진=(주)쇼박스

꿈틀하는 얼굴 근육에도 고스란히 감정이 느껴진다김규평의 절제와 억압을 표현하기 위해 스크린 속에서 극단적 클로즈업이 몇 차례나 이뤄졌지만 이병헌은 완벽하게 자신의 신으로 그것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실존인물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허상의 인물인 이병헌표 <남산의 부장들> 김규평이 완성됐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김규평(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이병헌은 권력의 2인자로 언제나 박통(이성민) 곁을 지키는 김규평을 연기했다.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박통의 정권 실체를 고발하기 위해 작성한 회고록을 되찾기 위해 나서지만 ‘진짜 2인자는 따로 있다’는 정보를 듣고 달라진 권력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추적하고 파악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첫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겼던 영화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 <남산의 부장들>로 2번째 호흡을 맞춘다는 것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앞서 <마약왕>(2019)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였던 우민호 감독이기에 절치부심 끝에 이병헌과 또 한 번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으나 이병헌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자신의 진가를 또 한 번 증명했다. 
 

사진=(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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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마약왕> 때 러닝타임에 대해 감독님이 많이 신경 쓰시더라. 사실 <내부자들>도 러닝타임이 긴 편이었는데 운이 좋게 영화가 많이 사랑을 받은 거다. <남산의 부장들>을 찍으면서는 시간을 계속 체크해나가셨다”고 말했다. 또한 <마약왕>의 흥행 실패로 우민호 감독이 부침을 겪었던 것을 장난스럽게 언급하며  “감독님이 많이 차분해지셨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감독이든 배우든 작품을 해나가면서 변화는 게 있겠지만 우민호 감독은 영화 인생 중에서도 변화될 만한 시점이 많은 분인 것 같다”고 익살을 떨기도.
 
<내부자들>을 통해 우민호 감독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근현대사 중에서도 주요한 사건을 모티프로 재구성한 영화다. 아직도 실존인물에 대한 견해가 분분한 탓에 출연을 결정할 당시 배우가 느끼는 부담도 당연히 있었을 터.
 
이병헌은 “정치적인 사건이자 실제 사건이다.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처음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이 ‘현실에 없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만들거나 의문스러운 부분을 영화가 규정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객관적인 시선이길 바랐고 감독님도 그런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셨다. 늘 그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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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의 말 그대로다. <남산의 부장들>은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기 위해 일관된 톤을 유지한다. 정치적인 사견도 일체 없다. 오히려 더 드라마틱했을 그 날의 사건을 냉소적이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흐트러짐이 없는 견고한 김규평의 캐릭터가 영화의 분위기를 유지해나가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이병헌은 영화에 다수 등장했던 극단적인 클로즈업에 대해 “영화의 성격상 느와르 장르는 다른 필름보다 더 어둡다. 그래서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오는 신들이 많았다. 그런 클로즈업은 영화관에서 보면 얼굴이 집채만 한 크기로 나오기 때문에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신에 맞는 감정만 충만하게 가지고 있으면 고스란히 전달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레퍼런스를 참고해 이병헌이 직접 추가한 설정도 김규평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냈다. 이병헌은 “근현대사의 큰 사건이기 때문에 자료가 많았고 감독님에게도 받은 자료도 있었다. 운 좋게 아는 사람을 통해 당시 직간접적으로 실존인물 근처에 있던 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자료화면 중에 마지막 실제 법정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 속에서 수감생활 후 헝클어진 머리를 계속 뒤로 넘기더라. 아주 예민하고 곤두선 느낌이라 김규평 캐릭터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하인드를 털어놨다.
 
외적인 측면에서의 싱크는 대표적으로 헤어스타일과 안경으로 가져갔고 나머지 목소리나 말투 등 외모적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말자고 협의했다굳이 살이 찐다고 하더라고 그걸 막을 생각은 없었다몸무게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촬영했던 것 같다.”
 

사진=(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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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과의 대립도 볼 만한 장면이다. 박통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방식의 충성 경쟁을 벌이게 된 김규평은 내내 유지하던 평정을 곽상천과 크게 대립하기도. 특히 곽상천 역을 위해 100kg까지 증량한 이희준과의 인간적인 몸싸움(?)은 소소하게 웃음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이희준이 그렇게 살이 찔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살이 찌니까 평소와 다른 톤들이 나오더라.(웃음) 능글맞게 연기하는 것을 보며 많이 웃었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곽상천 덕분에 쉬어가는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시대적이고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김규평이나 곽상천의 모습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씩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 않나. 결국엔 충성과 경쟁, 질투, 시기, 배신 등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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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영작인 <백두산>과 상영을 앞둔 <남산의 부장들>, 2월 크랭크인을 앞둔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노희경 작가의 신작 <히어(Here)>까지 이병헌의 2020년은 여전히 바쁠 예정이다. 데뷔 30주년에도 변함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언제나 다양한 얼굴로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이병헌은 “앞으로도 이야기의 힘과 재미를 보고 내가 연기해야 할 인물의 감정을 본 뒤에 작품을 선택하고 싶다”며 “내가 안 해본 직업군이나 장르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 자체가 이야기와 캐릭터의 감정이다”라고 전했다.
 
그가 꼭 스타 감독만을 고집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이병헌은 신인 감독과의 작업도 꺼리지 않았다. 그는 “영화는 감독이 중요하다. 좋은 감독과도 당연히 하고 싶지만 이야기가 매력적이면 그런 것들을 이기는 것 같다. 행여 그 신인감독의 학생 시절 작품이나 단편, 자료가 없더라도 좋으면 한다. 물론 고민은 하겠지만 영화적인 재미에 빠져서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진=(주)쇼박스
사진=(주)쇼박스

영화와 드라마를 균형 있게 병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언제나 긴장된다”며 “리듬이나 호흡이 다르니까 부담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연기관과 일맥상통하는 자신만의 신념을 밀어붙였다. 그는  “결국 기본은 그 스토리가 뭘 얘기하고자하는지 캐치해내는 것이고 내가 맡은 연기가 어떤 역할을 해내는지가 중요하다. 목표 지점이 어딘지 온전히 그 감정을 살려서 연기를 하려고 한다. 그 믿음이면 TV든 스크린이든 관객들이든 시청자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해 한국영화탄생 100주년과 맞물려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이 해외 선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먼저 할리우드 시장을 경험하고 개척한 이병헌도 한껏 고무적인 목소리를 냈다. 최근 <기생충>은 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최고의 상인 작품상을 받아 또 하나의 트로피를 추가했다.

 

사진=(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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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업계 사람들끼리의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상업예술이기 때문에 업계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 시청자가 중요한 거다. <기생충>이 이번에 얼마만큼 주목을 받고 성과를 이뤄내느냐가 중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한국영화가 101년을 맞이했는데 역사적인 순간에 획을 그어놓으면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또 한 번의 추진력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남산의 부장들> 또한 충분히 해외에서 흥미를 느낄만한 주제인 것 같다는 말에 이병헌 또한 긍정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보였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어딘가에 출품되거나 노미네이트 될 수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도 개봉을 안 한 영화지 않나. 나중에 파급력 있게 인지도를 쌓아나가게 되는 작품이냐가 중요할 것 같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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