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산의 부장들”,견고하게 충돌하는 에너지
[리뷰] “남산의 부장들”,견고하게 충돌하는 에너지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0.01.16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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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쇼박스
사진=(주)쇼박스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다. 사족을 배제하고 담담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사건을 나열했다. 촘촘하게 맞물린 이야기 안에서 강렬하게, 때로는 서늘하게 충돌하는 에너지들을 관망할 뿐이다. 113분간의 러닝타임은 정치색을 배제했다던 우민호 감독의 말을 증명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197910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기 전 40일간의 피 말리는 권력 전쟁을 그린 작품. 18년간 지속된 독재정권의 종말을 알린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이지만 명확한 내막을 알 수 없었던 그 시절로 시간을 되돌렸다.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정치 이면사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미국에서의 청문회를 통해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는 장면으로시작한다. 박통(이성민)혁명의 배신자라고 폭로한 박용각을 잠재우기 위해 현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각각 나선다. 독재 정권을 향한 이들의 과열된 충성, 그로 인해 충돌하는 인물간의 에너지와 밀도 높은 심리전이 영화를 가득 메운다.

 

사진=(주)쇼박스

김규평은 혁명의 의미를 끊임없이 반추하며 진정한 2인자를 꿈꾸는 인물. 각 잡힌 자세와 정돈된 머리스타일 만큼 박통 앞에서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정치 암투 속에서 그는 결국 휘청거리고 만다. <남산의 부장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김규평 캐릭터를 현미경에 올려놓고 그가 왜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영화는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기 위해 일관된 톤을 유지한다.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경솔하게 널뛰지 않는다. 치밀하게 계산된 전개, 절제된 영상미를 바탕으로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변주하는 인물들의 감정 선을 세심하게 다룬다. 관객들의 몰입도와 집중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지만, 러닝타임 내내 차분하게 진행되는 설명조 전개가 다소 지루하다고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수 있다.

 

사진=(주)쇼박스

<남산의 부장들>은 배우 덕을 많이 본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실존인물을 연상케 하는 배우들의 역량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무엇보다 1인극을 보는 듯 관객을 단번에 빨아들이는 이병헌의 내공엔 박수가 아깝지 않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김규평의 심리 상태를 사소한 눈 밑 떨림 하나로도 설명해낸다. 실감 나는 캐릭터 표현을 위해 그가 얼마나 고심했을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라는 섬뜩한(?) 대사를 남긴 이성민도 미친 존재감을 뽐낸다. 그는 내외적으로 완벽하게 박통을 소화했다. 이젠 로도 연기가 가능한 지경에 오른 그는 촛불과 같은 권력 앞에서 히스테릭하게 변하는 박통을 연기하며 극의 중심을 잡아냈다. 맹목적인 충성과 대쪽 같은 신념을 가진 우악스러운 경호실장 곽상천 역의 이희준, 사건의 시발점을 제공한 박용각 역의 곽도원, 우아하게 시선을 이끄는 로비스트 데보라 심 역의 김소진 또한 제 몫 이상을 해냈다. 핵심 전개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전두혁 캐릭터도 이 영화의 킬링 포인트다. 

 

사진=(주)쇼박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인만큼 현실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도 <남산의 부장들>을 즐기는 포인트 중 하나. 마치 1979년에 초대된 듯 섬세한 배경 고증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113. 122일 개봉.

 

 

 


평   점 ★★★☆☆
한줄평 우민호 감독, 명예회복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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