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시윤, 겸손의 미학
[인터뷰] 윤시윤, 겸손의 미학
  • 이수민
  • 승인 2020.01.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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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배우 윤시윤에게 가장 어울리는 키워드다. MBC <지붕뚫고 하이킥>으로 데뷔하여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뒤 KBS2 <제빵왕 김탁구>로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어느덧 데뷔 11년 차 윤시윤에게는 작품만큼 값진 ‘연기의 철학’과 ‘인격적 성숙’이 깃들었다. 철저한 자기 객관화와 겸손, 그러면서 스스로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여유는 무척 강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이다. 오래도록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지난 14일 오전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배우 윤시윤과 tvN <싸이코패스 다이어리>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찍이 라디오 일정을 마치고 취재진을 만난 윤시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눈을 빛냈다. “어디서 오셨어요? 추우시죠”라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앞서 분위기를 밝혔다.
 
종영 소감에 앞서 윤시윤은 “늘 그렇지만 인간보다 힘이 센 동물들도 겨울잠을 자는데, 체력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끝나고 2~3일은 잠든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 종영 실감은 나지 않아요. 조만간 츄리닝 차림으로 함께 했던 배우들을 다시 만날 건데, 그때 실감이 나지 않을 까요”라며 털털하게 웃어보였다.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 윤시윤의 육동식맹수사회에서 소리를 내는 작은 양이었죠
 
윤시윤은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 자신을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 착각하게 된 평범한 직장인 육동식 역으로 분했다. 코믹과 스릴러를 오가는 육동식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한 작품에서 두 가지의 장르를 선보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이 따랐다. 윤시윤은 “하나의 신이라고 해도 빌딩 격투 신부터 차에 치이기도 하고 추격하고 넘어지고 구르고 등등 액티브한 신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분명 쉽지 않은 장면들이었죠. 휘뚜루마뚜루 넘어갈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 장면마다 힘주어 찍어야 했어요. 더군다나 날씨도 추워서 중간에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죠”라고 회상했다.
 
고생 한만큼 결과는 좋았다. 윤시윤은 육동식에 완벽 빙의되어 일상생활에서의 공감과 싸이코패스로 돌변했을 때 전달되는 카타르시스로 연기력을 호평 받았다. 어떻게 캐릭터 분석을 했느냐는 말에 윤시윤은 “사실 (육동식의) 두 면에 큰 차이를 두지는 않았어요. 사실 상황자체가 굉장히 넌센스고 아이러니였잖아요. 그 아이러니를 연기할 때가 가장 재밌는 거니까 그냥 평범한 육동식을 연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동식이는 아주 평범한 우리들을 상징하는 인물이에요. 과하게 웃기려고 하기 보다는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웃음 포인트를 원했죠”라며 “만약에 내가 (실제로는 아니지만)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말도 안 되게 어설프겠죠.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과연 어떨까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죠”라고 설명했다.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육동식은 호구가 아니라 우리를 상징하는 인물이에요.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사회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풀 뜯는 양밖에 안되죠. 다른 작품에서는 대부분 양이 늑대와 대적하는 내용들을 보여주면서 ‘비범한 양’을 조명하지만 동식이는 그저 힘차게 ‘음메’하는 정도에서 끝나요. 그런 부분에서 사람들은 어색함, 어설픔, 부족함 같은 것들을 느꼈지만 결국에는 그런 양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동식이의 귀여운 울림들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양이기 때문에 그것 밖에 못하지만 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은 멋져 보이고 단단해 보였죠. 응원 받아 마땅한 인물이었어요.”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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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소재와 변화무쌍한 장르로 신박한 웃음을 이끌었지만 마지막 회 최고 시청률 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성적에서는 다소 아쉬운 기록으로 마무리 했다. 이에 대해 윤시윤은 “일단은 그 정도의 수치만큼 봐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 즐거움을 느끼셨을 수도 있고, 의리로 봐 주셨을 수도 있겠죠. 그분들에게 ‘얼마만큼의 즐거움을 드렸을까’ 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감사함을 먼저 전하고 싶고요.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즐거움을 드렸다면 수치는 무조건 올라가요. TV를 잘 안보는 시대라고 한들 수치가 잘 나오는 드라마는 지금도 나오고 있으니까요. 당사자들은 늘 최선을 다하고 진정성을 보이고 서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결국 중요한건 즐거움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라며 소신을 밝혔다.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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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행 요소 보단 성실함” 윤시윤이 밝힌 배우로서의 경쟁력
 
올해로 데뷔 11년 차로 안정기에 접어든 배우지만 윤시윤은 겸손하고 또 겸손했다. 자기 객관화가 또렷하며 꾸준한 스스로의 평가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로 배우로서의 철학을 다지기도 했다.
 
다양한 작품에서 늘 새로운 모습들을 선보이는 만큼 캐릭터에 변주를 주는 기준이 있느냐는 물음에 윤시윤은 “제가 변주를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단호함을 보였다.
 
“배우들은 인기가 있든 없든 어떤 위치든 간에 선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선택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늘 겸손하고 감사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죠. 저는 그게 배우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훨씬 뛰어난 톱스타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도 기회를 주고 대본을 먼저 주신다면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결격들이 인지되면 정말 감사해도 거절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는 무조건 도전을 해요. 그건 저에게 복이에요. 전작과는 완벽하게 다른 캐릭터를 저에게 맡겨준다는 것은 곧 믿어준다는 말인데, 그럼 기꺼이 참여해야 되지 않을까요.”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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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배우 윤시윤에게 부담이 되는 작품이나 캐릭터란 없을까. 그는 “안 해본 캐릭터에 대한 걱정은 물론 있었죠. 배우로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에요”라며 “하지만 제가 11년 동안 깨달은 절대적인 진리는 ‘종합예술로 구분되는 한 작품 속에서 내가 기여하는 퍼센테이지는 생각보다 굉장히 적다’라는 것이에요”라며 그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연기자는 생각보다 작품에서 기여하는 바가 적어요. 연기자가 하는 게 전부인거 마냥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거죠. 배우가 같은 연기를 해도 연출과 시나리오, 조명, 음악, 의상 각종 요소들이 달라지면 정말 아예 다른 것들이 나오거든요. 결국 함께 만드는 일이라서 서로 믿고 할 수 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저는 그저 그 인물이 될 집중만 하면 알아서 편집과 각종 요소들이 입혀져요. 절대로 제가 잘해서가 아니에요.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 마음을 놓기 시작했어요. 쓸데없는 것에 힘을 주지 않고 힘을 줄때가 어떤 부분인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작품에서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음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며, 기댈 수 있을 때, 저는 그게 배우로서의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데뷔 이후로 끊임없이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축복이다. 인터뷰 내내 이어졌던 그의 겸손은 자신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서도 이어졌다.
 
윤시윤은 “저는 아직도 제가 위험요소가 많은 주연배우라고 생각해요”라며 웃음을 보였다. 그는 “흥행여부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불안함이 아직은 있는 상태죠. 하지만 ‘이 친구만큼은 이 작품을 성실히 해줄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더라고요. 언론적인 발언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바꾸면 이쪽 업계에서 저의 경쟁력은 없어진다고 봐요. ‘이 친구가 조금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함을 지울 만큼 최선을 다해줄 것이고 연출자와 스태프들에게 의지하면서 잘 해주지 않을까’하는 믿음이 심어져 있어요. 그것들에 지금까지 저에게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믿어주시는 분들에게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어요. 이건 자기 객관화로써 사실이에요. 흥행요소보다 불안요소가 많은 주연 배우라서 여전히 긴장하고, 노력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 배우예능인나는 즐거움을 드리는 사람
 
윤시윤하면 예능을 빼놓을 수 없는 배우다. <맨발의 친구들>부터 <정글의 법칙> 지난해 종영한 <1박2일 시즌3>까지 출연하며 굵직한 존재감과 함께 예능감을 자랑했다. 그 덕에 윤시윤을 예능인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연예인이라는 본질은 제가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중들이 만들어 주시는 거죠”라며 소회를 밝혔다.
 
이어 윤시윤은 “제가 드라마를 지금까지 1년에 두 작품씩은 꾸준히 했어요. 하지만 그걸 보지 않는다면 저는 없는거죠. 드라마를 매일 했어도 <1박2일>만 봤다면 저의 본질은 예능인이에요. 대중들이 불러 주시는게 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죠. 지금은 배우 윤시윤으로서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이 작품만큼이나 소중한 기회가 예능에서 또 찾아온다면 기꺼이 가서 최선을 다할 마음이에요. 좋은 예능인이라는 말 또한 듣고 싶죠. 저는 결국 즐거움을 드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기도 열심히 할 거고 예능도 열심히 임할 거예요. 그게 저의 직업이니까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사진 = 모아엔터테인먼트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준혁 학생’으로 한 번, <제빵왕 김탁구>에서 ‘탁구’로 두 번. 윤시윤은 대중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굵직한 ‘인생캐릭터’를 남겼다. 이제 한 번쯤 인생 캐릭터를 갱신할 때가 되지 않았나 라는 말에는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을 이어갔다.
 
“배우로서 언제나 꿈꾸고 있죠. 그래도 저를 대표할만한 대표작이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복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죠. 저에게는 그런 왕관이 있고 이미 복된 배우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이제부터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최선을 다해서 봐주는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물론 상징적인 인물을 또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죠. 또 도전하고 싶지만 그걸 못 이룬다고 해서 욕심내거나 우울해지면 안 된다고 봐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이미 복에 겨운 사람이에요. 좋은 의미에서는 또 다른 키워드를 만들고 싶지만 그 전제는 나는 복 받은 배우라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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