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정세, 디테일의 힘
[인터뷰] 오정세, 디테일의 힘
  • 이수민
  • 승인 2020.01.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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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웃긴 지독한 악당 테드 창, 어딘가 늘 허술한 로펌대표 연준규, 찌질함 속 은근한 귀여움을 갖춘 노규태까지. 세 캐릭터의 공통점은 비호감이면서도 어쩐지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역할인 것 같지만 작품마다 다른 톤의 웃음을 녹여내는 기술, 작은 변주로 큰 변화를 선사하는 능력은 배우 오정세만의 강점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힘은 디테일 속에 숨어있다.

Editor 이수민 | Photo 프레인TPC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편견에 갇힌 맹수 동백(공효진)을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로 깨우는 촌므파탈 황용식(강하늘)의 폭격형 로맨스. 오정세는 극중 옹산시 차기 군수를 꿈꾸며 허세를 부리지만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노규태로 활약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 강요 없는 속 깊은 메시지” 오정세가 밝힌 <동백꽃>의 매력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이 시청률 23.8% (닐슨코리아)로 마무리하며 사랑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탄탄한 서사는 물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살아 숨 쉬며 뚜렷한 개성을 자랑하기 때문. 오정세는 대본부터 현장 분위기까지 모두 감사함의 연속이었다며 첫 종영소감을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한자리 수의 시청률이었어도 지금이랑 비슷한 정서의 행복감이었을 것 같아요. 물론 시청률이 잘 나와서 더 많이 관심을 받고 주변에 좋아진 분들도 많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시청률에 크게 좌지우지 하지 않으려는 편이기도 해요. 저는 처음 이 대본을 받고 읽었을 때의 행복감, 그 이야기가 실제로 구현 되었을 때의 만족감, 사람들의 좋은 평가로 인한 기쁨으로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오정세는 대본을 받을 때마다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작품과 현장에 높은 만족도를 느꼈다고. 그는 “보통 대본이 나오면 배우는 숙제를 풀 듯이 분석을 해야 하고 스태프들은 다른 요소들을 수없이 체크해야 해요. 신기한 게 <동백꽃>은 대본이 나오면 배우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이 ‘일이 왔구나’ 라는 생각보다 ‘뜨끈뜨끈한 선물이 왔구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같이 웃고 기대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저희끼리도 일을 하면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가지기 마련인데 그러다가도 다음 대본을 보면 그런 것들이 싹 날아가더라고요. 엔도르핀이 충만한 현장이었죠. 모두가 함께 즐거웠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동백꽃>은 오정세의 출연작인 동시에 ‘최애’ 드라마기도 했다. 매번 시청자의 입장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방송을 챙겨보게 되었다고. 그런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단연 엔딩 장면이었다. 

“제가 만들어가면서도 무척 재밌게 봤어요. 21부가 없어 아쉽다는 시청자 반응과 같은 마음일 정도로요. 특히 엔딩으로 갈수록 누구도 억지로 가르치려하지 않고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데 깊은 울림이 남고 감동이 오는 게 <동백꽃>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회의 ‘이 세상에는 괴물도 많지만 착한 사람이 더 많다’는 대사가 이상하게 참 가슴이 찌릿하게 와 닿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옹산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안에서의 아무것도 아닌 짧은 대사들이 저에게는 커다란 파도나 폭풍처럼 감동을 가지고 왔던 것 같아요.”

“대본을 받고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은데 저 스스로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이 오고 재미와 동시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죠. 마력이 있는 기적 같은 이야기였어요.”

◎ 95%의 대본과 5%의 애드리브로 탄생한 노규태
 
노규태는 <동백꽃> 속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로 누리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허세로 무장했지만 변호사 아내 자영(염혜란) 앞에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 덕분에 ‘노큐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개성 강하고 한편으로는 입체적인 캐릭터인 만큼 오정세는 철저한 준비과정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일단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 노규태 캐릭터가 너무나 재밌게 잘 쓰여 있었어요. 1차 목표가 95%이상 대본대로만 잘 구현하자는 것이었고 나머지 5%는 저의 애드리브와 디테일을 잘 붙여보자는 마음이었죠. 사실 애드리브를 하면서도 많은 고민을 했어요. 대본대로만 하기에는 너무 갇힐 것 같고 그렇다고 여기서 뭔가를 더 해버리면 너무 과장이 될 수도 있어서 그 중간을 맞추는 게 저에게는 가장 어려웠던 작업이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래도 90% 이상은 대본대로 했던 것 같아요. 나머지는 현장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추가한 정도였죠.”
 
그의 말대로 오정세는 애드리브를 추가하기보다 규태의 정서를 이해시키기 위해 앵글에 담기지 않는 디테일들에 특히나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규태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고민으로부터 시작됐다.
 
“대본은 거의 그대로 갔고 저는 규태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살리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엉성하게 채워져 있는 벨트나 화면에는 잠시 스쳐가는 방에 외로움에 관한 책들을 쌓아놓기도 했죠. 흰바지를 입을 때는 늘 유색 속옷을 착용했고 명품 옷이지만 항상 실밥이 몇 가닥이 풀려있었어요. 실제로 집에서 입는 목 늘어진 티셔츠를 극중 집에서도 착용하기도 했고요. 규태의 스타일에는 특정 콘셉트가 없다는 게 콘셉트였어요.”
 
극 초반 노규태는 건물주로서 동백에게 갑질을 한다거나 향미에게 호감을 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자칫 잘못 표현하면 불편한 캐릭터로 비춰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오정세는 ‘규태는 결국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작가의 말을 믿었다. 

오정세는 “작가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규태를 구상했고 저는 초반에만 대본을 받은 상태였어요. 사회적으로 민감한 분위기 때문에 초반에 그런 모습들이 불편하게 비춰지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이 친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규태의 외로움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어요. 물론 외로움이 상황을 정당화 시킬 순 없어요. 혼날 것은 혼나야 하지만 ‘저 친구가 왜 그랬을까’를 보여주는 것이 제 숙제였죠. 외로워서 강한척하고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게는 향미고 동백이고 상관없이 마음을 다 줘버리는 인물이니까요. 결국 외롭지만 속이 다 보이는 규태의 2% 부족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의 디테일을 살리기 시작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오늘도 내일도배우 오정세는 달린다
 
오정세는 올해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극한직업> 테드 창에 이어 tvN <진심이 닿다> 로펌 대표 연준규 역을 소화하며 코믹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번 <동백꽃>에서도 웃음을 담당하며 큰 사랑을 받았지만 배우로서 마냥 ‘웃긴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부담감이나 우려가 있지는 않을까. 그는 “너무 걱정 마세요. 조만간 실망하는 작품이 오거든요”라며 털털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그런 기대나 우려를 하면 저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작품을 못 해요. 분명 이미 어떤 작품에서 실망을 줬을 수도 있고 다음 작품에서 혹은 다음다음 작품에서 식상해라는 반응을 당연히 얻을 수도 있겠죠. 그런 반응을 그냥 오는 대로 잘 받아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접근하는 방식은 사실 캐릭터마다 공통점도 있긴 하지만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걸 인위적으로 바꾸기 보다는 조금씩 다르게 접근을 해서 미묘한 차이로 또 다른 결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라는 믿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미 ‘다작배우’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오래 동안 연기를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오정세는 순간순간의 노력을 믿고 오늘도 열심히 달려보겠다며 눈을 빛냈다.

“배우이다 보니 모쪼록 오래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어느 순간 저를 굉장히 다작배우라고 생각하시는데 작년에는 사실 두 작품밖에 안했어요.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지 않아요. 최근에야 쉼 없이 달리고 있긴 하지만요. 계속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서 늘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사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달리는 것 같아요.(웃음) 언제나 좋은 작품만 할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도 없지만 여유는 늘 열어두고 싶어요. 좋고 안 좋은 것의 반복이 곧 인생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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