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는 아직 ‘배우 박용우’를 모른다
[인터뷰] 우리는 아직 ‘배우 박용우’를 모른다
  • 박주연 기자
  • 승인 2019.11.21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크린 속에서 번뜩이던 날 것의 캐릭터 느낌은 온데 간데 사라졌다. 박용우는 온화하게, 느리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놨다. 가만히 귀 기울이게 되는 매력이 있는 배우, 실제로 만나보니 더 매력적인 배우. <카센타>로 3년 만에 스크린 컴백을 이룬 박용우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영화 <카센타>는 파리 날리는 국도변에서 카센타를 운영 중인 부부 재구(박용우)와 순영(조은지)가 돈을 벌기 위해 계획적으로 도로에 못을 박고 펑크 난 차를 수리해 돈을 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블랙코미디. 박용우는 극중 한 달에 겨우 20만 원도 못 버는 짠내 나는 재구 캐릭터를 맡았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성질 더러운 외지인으로, 순영의 가족에게는 출가한 딸 고생시키는 못난 남편으로 못 박힌 인물. 박용우는 기존의 스마트하고 온화한 이미지를 내려놓고 거칠고 서늘한 캐릭터로 분했다. 그러면서도 언뜻 비치는 유약함으로 재구를 이중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구현해냈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 박용우, <카센타> 보고 눈물 터진 이유
 
<카센타>는 여러모로 박용우 안에 갇혀 있던 색다른 이미지를 꺼낸 작품이다. 그렇기에 배우 본인의 만족도가 높은 동시에 부담도 있다고. 박용우는 스타포커스와 만난 자리에서 “항상 이 시기에 임박해서는 수험생의 마음이다. <카센타>는 유독 기분이 좋은 게, 시험공부를 열심히했다는 자신감은 있다. 그 다음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일단 편안하게 시험장에 가보자는 심정이다”라고 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Q.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 보인다
A. 맞다. 언론시사회 때가 2번째 관람이었는데 그땐 좀 더 이성적으로 보게 됐다. 이 영화가 좋다는 확신이 들더라. 그리고 똑같은 코드, 똑같은 지점에서 내 마음이 울었다. 사람의 연약함, 찌질함 이런 것들이 극대화돼서 표현된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Q. 연기 당시에도 슬픔들이 느껴지던가
A. 요 사이에 지키고자하는 패턴 중 하나인데 ‘아무 생각 말고 연기에 임하자’는 거다. 이미 촬영 전에 수없이 리딩을 했고 감독님과 만나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내 몸 속 어느 곳에 이미 배어있다고 믿었다. 미리 준비를 하면 자꾸 이성적인 생각이 개입될 것 같았다. 본능적인 표현들이 자기 검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걸 지양하고 슛 임박해서 집중했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Q. 그럼에도 처음에는 작품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A. 전체적인 뼈대가 훌륭한 영화였는데 감정 표현의 디테일들이 좀 아쉬웠다. 캐스팅 여부랑 상관없이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첫 만남에 감독님이 자꾸 내 얘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간을 준비한 영화인데 얼마나 할 얘기가 많았겠나. 하지만 나는 불과 얼마 전에 받은 시나리오였고 감독님의 비하인드를 다 알 수 없었다. 소통이 잘 안 된 상태에서 애매하게 헤어지고선 해외여행에 갔는데 여행지에 있을 때 이메일로 바뀐 시나리오를 보내오셨다. 내 얘기를 8~90% 정도 반영해주셨더라. 바뀐 시나리오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이 정도로 귀와 마음을 연 사람이라면 소통하면서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감독님과 나눈 후일담은 없나?
A. 그때 왜 그러셨는지는 굳인 물어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추론해보자면 신인 감독이고 주연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 힘을 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주눅 들지 않고 믿음직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Q. <카센타>는 하윤재 감독의 입봉작이다. 소통하는 데에 현장의 어려움은 없었나
A. 너무 없어서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미 일적으로는 서로의 성향을 다 파악했고 이야기를 워낙 많이 나눴다. 이번에는 특히나 더 세밀하게 준비를 했다. 좋은 뼈대 안에서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내가 하고 싶은 대사, 상황 등을 지문과 대사로 옮겨 적어서 감독님에게 보여드렸다. 그중엔 터프하고 차가운 재구, <카센타> 속 재구, 좀 더 허당끼 넘치고 바보 같은 재구도 있었는데 감독님은 지금의 스타일을 가장 좋아하셔서 기본 콘셉트로 잡고 살을 입혔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Q. ‘자유롭게 연기했다’는 말이 방금 전 말씀의 대답이 될 수 있겠다
A. 맞다. ‘관성으로 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전체 틀이 갖춰지고 감독과 배우간의 신뢰가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관성으로 가는 것 같다. 또 현장에서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게 배우의 가장 직업적인 매력 아니겠나. 진짜 디테일은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거다. 경험상, 사전에 틀이 세밀하게 갖춰진다면 디테일을 만드는 건 오히려 쉽다.
 
Q. 합을 맞춰가는 상대가 배우 조은지라 더 재미있었겠다
A. 배우로서의 가장 큰 행복은 개인적으로 팬인 분들을 우연찮게 만났을 때, 현장에서 만났을 때, 연기를 했을 때인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배우가 조은지였다. 조은지라는 배우는 액션 리액션이 유연하고 열려 있는 배우다.
 
Q. 두 분의 리액션 합이 중요했던 맨손 난투전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A. (조)은지 씨가 나를 많이 때려야 하는 입장이라 힘들었을 거다. 감독님이 남자가 여자를 때리거나 욕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용납 못하신다고 하셨다. 재구는 다 받아주는 입장인 게 좋다고 하셔서 전적으로 따랐다. 영화엔 오히려 순화된 장면이 나갔다. 은지 씨가 걱정할까봐 이야기 안 했지만 심하게 맞아서 부상을 입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거의 초반에 찍은 테이크가 영화에 나간 거라고 보면 된다. 
 
Q. 결말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영화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은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열린 결말이 어울리지만 관객에 따라서 꽤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A. 결말 버전이 7~8개가 됐다. 그중에 채택된 버전이다. 나는 지금의 결말이 <카센타>에 어울린다고 본다. 배우로서 간절히 원했던 의지가 있었다면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작품에 많이 출연하고 싶다는 거였다. 본능적인 게 어찌 보면 가장 순수하고 진실에 가깝지만 시비를 규정할 순 없다. 본질에 대해 표현하는 영화라면 답을 주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카센타>가 좋은 쪽으로 본질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 “직업적인 美를 추구한다”…박용우의 철학
 
잔잔하지만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내공과 연륜, 여유가 무엇인지 박용우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단다. 1995년도에 데뷔해 영화와 드라마 할 것 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지만 그 속에 어려움이 있었고 부딪히고 극복해내면서 데뷔 초와는 다른 박용우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Q. <카센타> 속 재구 상황이 참 안 풀리더라. 어찌 보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는 배우 입장에서 공감됐겠다
A. 재구의 입장은 너무나 이해가 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몇 년간 활동이 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내가 뭘 원하고 좋아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질문을 많이 했었다. 어떤 직업이든 일이 잘 풀려서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있고 본의 아니게 그렇지 않은 시기도 있다. 예전에는 일이 한 번 잘 풀리면 평생 잘 풀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Q. 공백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꾸준히 활동하시지 않았나
A. 나는 공백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남들이 그렇게 보는 시기가 있었다. 그건 그 분들의 생각이니 그냥 내버려두는 거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쓸 지는 내 자유다. 누워서 잠만 잘 수도 있지만 나는 여러 가지를 시도했던 것 같다.
 
Q. 여러 가지 시도했다는 것은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이야기인가?
A. 요즘엔 일과 사랑을 나눠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할 땐 일에 집중해야한다는 건 알지만 이걸 이분법으로 나눌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개인적인 것들로 분류되는 것들도 결국엔 일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직업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편인데, 이 아름다움은 제각각 다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결국 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드럼을 8년, 영어공부는 3~4년을 했고 책을 꾸준히 읽은 지도 꽤 됐다. 이게 결국은 연기의 연장선이라는 거다. 예전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서 헬스클럽에 다니기도 했다. 관찰하다보면 그 분들도 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더라.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Q. 이렇게 바뀐 건 근래의 일인가?
A. 그렇다. 데뷔 초 때의 나는 말술이었다.(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술을 좋아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그저 닮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술을 많이 드셨는데 그걸 배우려고 했던 거다. 그걸 깨닫고 술을 안 마신지는 꽤 됐다. 물론 행복하고 감동적일 때의 낭만을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그 때를 제외하면 거의 잘 안 마신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때 술이 방해가 되더라.  
 
Q. 화제를 좀 바꿔보자면 멜로에 대한 생각은 없는가. 개인적으로는 영화 <동감>(김정권 감독, 2000) 속 박용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A. 장르의 꽃이 멜로 아니겠나.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장사가 잘 안 된다. ‘정통 멜로 하고 싶다’고 말하면 자꾸 치정극을 이야기하시더라.(웃음) 우스갯소리로 ‘그건 네 돈으로 해라’ 라는 얘기도 나온다. 멜로를 피했던 건 아니고 아직 좋은 기회를 찾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다. 
 
Q. 일단 올해에는 멜로 대신 두 개의 장르영화가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9년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나
A. 눈앞의 바람은 <카센타>가 잘되는 것이다. 배우를 계속 하고 싶고 연기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내가 알지 못한, 내가 능력이 안 돼서 소통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작품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코드로 만나서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관계에 열망이 있는 사람이니 흥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제작자가 아니기에 돈의 관념보다는 관계에 있어 연기자로서 최대한 소통하고 싶다. 일단은 여기에 집중하고 싶고 그 다음에는 연말에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이후에는 아마 <유체이탈자>(윤재근 감독) 홍보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