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이 목소리를 내는 법
[인터뷰]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이 목소리를 내는 법
  • 이수민
  • 승인 2019.10.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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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양한 이슈와 뜨거운 관심 속에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드디어 관객을 만났다. 젠더이슈를 다룬다는 것만으로 온라인상에는 각종 성(性) 대립구도가 형성됐으며, 비난과 지지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뜨거울 줄로만 알았던 영화의 뚜껑을 막상 열어보니 그 속은 그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이런 저런 말들이 치열하게 오고갔던 것에 비해 평범하고 현실적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담담한 톤으로 원작의 결을 따르며 에피소드 중심이었던 소설과 달리 큰 줄기의 단단한 서사로 상업영화의 맛을 살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도영 감독이 있었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 작은 점 찍었다” <82년생 김지영>이 남긴 유의미한 성과
    
2018년 단편 영화 <자유연기>로 제 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도영 감독은 <82년생 김지영>으로 첫 장편영화에 도전했다. 당시에도 화제의 중심에 서있던 원작 소설이기에 다양한 고민들이 앞섰다. 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걱정했던 것은 소재에 대한 불안함이 아닌 워낙 ‘탄탄한’ 베스트셀러 원작에 대한 부담감이었다고. 이래저래 많은 우려가 따랐지만 김도영 감독의 섬세한 눈높이와 방식으로 영화는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이끌며 현재도 높은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Q. <82년생 김지영원작의 소설은 언제 처음 접했나?
    
- <자유연기>를 만들 때 처음으로 봤다. 그 작품이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참고를 할 겸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보면서도 굉장히 공감을 많이 되더라. 처음부터 영화화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미쟝센 단편영화제 이후 제의가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게 됐다.
    
Q. 원작자인 조남주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부분이 있었나?
    
생각보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다보니 사실 영화 촬영이 끝날 때 까지 찾아뵙지는 못 했다. 하지만 조남주 작가님이 어떤 말을 하셨을까 정보를 찾아보던 중 팟캐스트를 듣게 됐다. ‘식초에 담긴 오이’ 얘기를 하시더라. 아무리 싱싱한 오이어도 식초에 오래 담겨있으면 피클이 되지 않나. 우리들의 상황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우리가 어디에 발을 담구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Q. 영화를 연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
    
소설 속 김지영은 점점 무언가를 깨닫고 의식이 변화한다. 그런 부분들을 영화에 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소설의 결과 같게 가려고 했다. 소설의 톤도 건조하고 담담하기 때문에 담백하게 그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영화의 특성상 강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일부로 자극을 넣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그려지기를 바랐다. 소설의 태도를 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엄마, 아내, 누나, 혹은 내 친구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헀다.
    
Q. 첫 장편영화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 물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지 않나. 제작 과정에서 투입되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그런 만큼 부담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엄청난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매 순간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여러 가지의 공부를 스스로 하기도 했지만 과정을 통해 배운 것들도 많다. 나에게는 금같은 시간이었다.
    
Q. 사실 개봉 전부터 이런저런 고초를 겪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심정이 궁금하다좋은 스코어에 기대감은 있었나?  
   
- 사실 예상은 못 했다. 장편이 처음이라 스코어에 대한 감이 없기도 했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정성을 쏟는 건 내 일이지만 그 이후의 평가와 스코어는 하늘이 주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첫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였던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굉장히 기뻤다. 우리들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에 닿는다고 느껴져서 좋았다. 작가님이랑도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이야기는 특별한 것 같다. 작품 자체가 하나의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 같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동감을 하고 있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Q. 베스트셀러였던 원작을 영화화 하는 과정에서의 부담감은 어떻게 극복했나
    
- 사실 영화를 만들고 나서도 여러 가지 고민들이 많았다. 원작에서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부분들이 너무 무뎌지진 않았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이걸 더 넣어야 했나?’, ‘더 했어야 했나?’ 라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반응을 보니 내가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덜 느끼게 됐다.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읽힌 작품이기 때문에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 온건하게 김지영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시선의 힘을 많이 믿고 있다.      
    
Q. 혹시 악성댓글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나어떤 생각이 들었나
   
물론 봤다. 하지만 악성 댓글의 많은 부분은 소설을 읽지 않고 달린 내용인 것 같더라. 한편으로는 그런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돌아보면 이것 역시 하나의 풍경일 것 같다.
    
Q. 개봉 후에는 그래도 댓글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남성관객들에게도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는 분위기인데
   
- 맞다. 그런 논쟁들이 힘을 잃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봐야하는 문제들이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그런 변화의 부분에 있어서 작은 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수많은 점을 찍었지만 이것 역시 그 무수한 점들 중 하나다. 무척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 빈틈없는 배우와 입체적 캐릭터의 만남
    
<82년생 김지영>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는 배우 정유미와 공유의 공도 컸다. 두 배우 모두 캐스팅 1순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망설임 없이 작품에 합류했다. 여기에 엄마, 직장상사 등 주변인물로 그려지는 배우들의 현실연기가 더해지며 오늘날 완성도 높은 <82년생 김지영>이 탄생됐다.
    
Q. 두 배우의 캐스팅 과정은 어떻게 되나?
    
- 정유미씨 같은 경우는 먼저 대본을 관심 있게 봐주었다. 작품을 좋아해주셔서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처음 만나는 순간 안심이 되더라. 배우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생기, 그 얼굴에 들어있는 그늘도 있었고 특히 눈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잘 해내셨다. 공유씨도 3년만의 복귀작인데 서브캐릭터임에도 기꺼이 참여해주셨다. 무척 행운이고 기분 좋은 과정이었다.
    
Q. 오프닝시퀀스나 빙의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정유미의 표정연기가 압권이라고 생각했다따로 표정에 대해 디렉팅을 해준 부분은 있나
   
전혀 없다. 본능적으로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더라. 그래서 더욱이 좋은 배우라고 느낀다. 그 순간은 완전히 그 신 안에 들어가 있었다. 영화가 배우들의 얼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많은데 두 배우 얼굴 모두 스펙타클하다. 굉장히 깨끗하고 맑은 기운을 가진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Q. 주변인물들 또한 굉장히 현실적인 연기를 잘 해주었던 것 같다특별히 악역이 없었던 데는 이유가 따로 있었나?
    
주변 인물들 모두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나쁜 사람이 나오면 김지영의 아픔이 그 나쁜 사람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개인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들도 모두 사회적인 관념이나 약속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지 않나. 다들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을 짚어보고자 했다.
    
Q. 김미경공민정박성연 배우 등 감초 같은 배우들을 잘 캐스팅 하신 것 같다
  
맞다.(웃음) 아무래도 나 역시 연극배우 출신이다 보니 마음에 늘 담아놓은 배우가 있었다. 아직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있어서 오히려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이야기지 않나. 연기력은 물론이고 낯설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확보되는 지점도 있었다. 다들 정말 멋지게 잘 해주셨다.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양언의 기자

◆ 할 말은 하고 사는 것사람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김도영 감독은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목소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삶을 살아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가능성을 들춰준 영화 <자유연기>도, 이번 <82년생 김지영>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비슷한 결을 가진다. 단순한 ‘여성서사’를 넘어 한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겠다는 다짐.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Q. 차후에는 감독님의 어떤 작품을 기대해볼 수 있나?
    
- 아직 계획된 것은 없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되든 간에 김지영처럼 내 말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높이 올라가야겠다는 욕망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유려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다 여성캐릭터가 많고 다양해졌으면 좋겠고 입체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주변에서 워낙 많은 여성들을 만나다 보니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여성캐릭터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는데 어떤 영화든지 다양한 여성 캐릭터의 삶을 녹여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로 만난다면 좋지 않을까.

사진 = 양언의 기자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Q.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난 후 관객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으면 좋을 것 같나
   
- 사실 영화 자체가 교훈을 강요하거나 ‘이런 생각을 해야 돼’ 라고 강하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을 돌아보면 좋겠다. 어머니, 아내, 딸, 누나 그들의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된다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떤 풍경에 우리들이 서 있나를 볼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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