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기획] 힙합시대, 다시 봄은 올까
[SF+기획] 힙합시대, 다시 봄은 올까
  • 이수민
  • 승인 2019.10.2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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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힙합에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전성기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았던 요 몇 년 간의 행보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대중들의 싫증과 래퍼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극에 달한 결과다. 그렇다면 국내 힙합은 앞으로 어떤 향방으로 흐르게 될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단까지 힙합의 역사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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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타임 

◎ <쇼미더머니>가 쏘아 올린 국힙의 대중화
 
한국에 힙합 문화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지누션, 업타운, 드렁큰타이거, 허니패밀리 원타임(1tym) 등이 계보를 이었고 2000년대에는 리쌍, 다이나믹듀오 등이 등장하며 명맥을 이었다. 다양한 래퍼들이 힙합의 대중화에 힘썼고 절반의 성공을 거뒀지만 그럼에도 힙합은 주류 장르로 올라서지 못했다. 이 때 분위기를 반전 시킨 게 2012년 방영된 Mnet <쇼미더머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행과 맞물려 유일무이 힙합 서바이벌을 탄생시켰고 조금씩 유행을 선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뜨거운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게 2013년 ‘컨트롤비트’ 사태. 당시 스윙스, 이센스, 다이나믹듀오 등 쟁쟁한 힙합 뮤지션이 디스(Disrespect, 음악을 통해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상대를 비난하는 힙합 문화) 랩 배틀에 참전했고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힙합 팬이 아닌 대중들의 이목까지 집중시키며 인기에 본격적인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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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센스 

래퍼들의 등용문이자 화려한 무대로서의 역할을 했던 <쇼미더머니>, 컨트롤비트 사태가 촉발시킨 힙합의 전성기는 곧 음원 차트 점령으로까지 화려하게 이어졌다. 이전까지 K팝 아이돌 그룹과 대형 아티스트들로 줄 세우던 음원차트에 래퍼들 이름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에픽하이, 자이언티, 스윙스 등을 비롯해 최근에는 기리보이, 창모, 헤이즈 등이 믿고 듣는 음원 강자로 떠올랐다. 또 장르 간에 컬래버레이션 및 피처링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 올드스쿨, 붐뱁 사운드가 지배적이었던 것과 달리 다양한 변주를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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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쇼미더머니' 방송화면 캡쳐 

◎ 전성기 어디로국내힙합의 현주소
 
‘꽃길’만 계속될 줄 알았지만 국내 힙합은 요즘 뜻밖의 암초를 만나 정체 중이다. 래퍼들의 옳지 못한 행실이 힙합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으로 이어지게 된 것. 씨잼, 바스코, 비아이, 아이언은 마약 논란에 중심에 섰고 영비, 노엘, 디아크, 블랙넛, 킹치메인은 학교 폭력 및 사생활 불량으로 대중들에게 큰 질타를 받았다. 뿐만 아니다. 상당수 래퍼들의 성희롱 및 여성비하, 시대착오적 가사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는 시대적 현안들과 맞물려 더욱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했다. 변질된 힙합 정신과 계속되는 논란으로 힙합 신에 대한 신뢰와 이미지는 점점 하락세를 탔다. 힙합에 무조건적으로 열광했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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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net 

이 때문일까. 신드롬급 인기를 구사했던 <쇼미더머니>마저 그 화력을 잃어가고 있다. 올해로 시즌8 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매번 비슷한 서사와 진부한 편집이 대중들에게 기시감과 피로함을 안겼다. ‘인맥힙합’,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릴 만큼 매년 비슷비슷한 출연자들이 등장해 더 이상의 신선함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 실력파 래퍼들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는 더 이상 대중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쇼미더머니777>은 고작 최고시청률 1%대를 기록하며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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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스타포커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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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온 

 

◎ 힙합이대로 멈출 순 없다변주를 꾀할 때
 
힙합의 침체기가 장기화되자 힙합신은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거칠고 강한 소재가 주를 이루었던 힙합음악이 점점 유연해지고 변화돼 가고 있는 것. 래퍼 피에이치원(PH-1)은 음악 속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배제하고 진실, 긍정, 경험을 테마로 하는 싱잉 랩을 선보여 각광받았다. 또 다른 싱잉 래퍼 식케이는 엑소, 윤하, 소지섭 등 비(非)힙합 장르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두루 참여하며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지난해 방영된 <고등래퍼2>에 우승을 차지한 김하온은 주로 평화와 명상, 아름다움의 이야기를 가사에 담았고 무해하면서도 탄탄한 실력의 소유자로 호감을 얻었다. Mnet <더 꼰대 라이브>, JTBC <요즘애들> 등 예능프로그램 출연해 인지도를 높이고 친근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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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스타포커스DB

경연 및 서바이벌로만 다루어졌던 힙합 프로그램에도 변화도 생겨났다. 지난 3월 올리브 채널에서 방송된 <노포래퍼>는 힙합 래퍼와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사람냄새 나는 포근한 힙합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실제로 <노포래퍼>에 출연했던 래퍼 행주는 “래퍼들 중 예능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를 포함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예능을 통해 랩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더라.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들이 자극이 된다. 이 프로그램을 발판삼아 더 다양한 예능을 이어가고 싶다”며 포부를 전했다. 현재 MBN에서 방영하고 있는 <사인히어>는 국내 최초 AOMG 힙합레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무의미하고 피로한 경연이 아닌 참가자 한명 한명의 재능과 가능성, 그들의 간절한 꿈에 초점을 맞추며 한층 인간적이며 풍부한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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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스타포커스DB

래퍼들의 자발적인 노력, 프로그램의 작은 변화는 힙합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순화시키고 등돌린 대중들의 마음을 천천히 되돌리고 있다. 고정된 ‘힙합’에만 머물러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힘들다. 특정 장르에도 유연함은 필요하다. 현시대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시대적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또 한 번의 영광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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