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리뷰] '82년생 김지영' 누구의 혐오도 아닌, 가장 평범한 이야기
[SF+리뷰] '82년생 김지영' 누구의 혐오도 아닌, 가장 평범한 이야기
  • 이수민
  • 승인 2019.10.15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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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작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차별 받은 여성’의 이야기가 자칫 ‘남성 혐오’로 비친다는 이유에서다. 소설은 과장하지 않았지만, 이미지가 없는 텍스트는 상상력을 만들어 오해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 됐다. 영화는 엔딩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설의 그대로를 옮겨 담았다. 생생하게 움직이는 김지영을 보고 그 누가 ‘남성혐오’를 운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82년생 김지영>은 누구의 혐오도 아니다. 가장 보통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다. 공감과 울림의 크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영화가 말하는 것은 단 한가지다. ‘목소리를 잃었던 한 사람이 자신의 말을 찾아 가는 이야기’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설 <82년생 김지영>(저자/조남주)을 두고 한동안 성(性)대결이 펼쳐졌다. 페미니즘 논란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소설은 1982년에 태어난 한 여성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고 묵직하게 풀어낸다.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100만부의 판매고를 넘기는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일각에서는 ‘남성혐오’라는 비난을 받았다.
 
화제의 중심에 섰던 소설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배우 정유미와 공유의 캐스팅 소식에 두 배우를 향한 악성댓글이 쏟아졌고 영화는 촬영도 시작되기 전 별점테러를 받았다. 하지만 두 배우와 감독은 개의치 않고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두 배우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베일을 벗은 <82년생 김지영>은 최대한 소설의 결을 따라가며 견고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김지영을 연기하는 배우 정유미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 동료, 혹은 친구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스크린에 가득 채워진 정유미의 표정과 침묵이다. 그는 어떤 과장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덤덤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감정의 폭이 클 수밖에 없는 인물임에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애써 누르며 관객의 마음을 짓누른다.
 
영화는 어떤 배경음악이나 효과음도 없이 중간 중간 침묵의 순간을 만든다. 그 시간은 오롯이 정유미의 표정연기로 채워지며 짧은 고요함 속에 복합적인 감정이 마구 휘몰아친다. 가장 큰 울림을 남기는 장면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조용한 장면이 된다.
 
1982년, 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여성들은 일찍이 가족을 위해 경제활동을 시작했던 어머니 세대의 희생으로 평등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적인 요소들은 집과 회사를 불문하고 사회에 어디서든지 고개를 내밀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이를 정확하게 짚는다.
 
명절마다 부엌과 거실에 있는 사람의 성비는 확연하게 갈라지며 할머니는 두 딸보다 막내 남동생을 먼저 챙긴다. 똑같이 입사해도 남자 동기보다 승진에서 밀리며 숨 쉬듯 만연하여 문제의식조차 없는 성희롱 발언에 대응하면 ‘예민하고’, ‘기가 센’ 사람이 된다. 여성 화장실 몰래카메라와 출산 이후 여성의 복귀 문제, ‘맘충’ 등의 혐오발언은 소설보다 디테일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최근에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한들 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영화는 해당 장면들을 과장하지 않고 마지막에는 원작과 다른 결말을 선보이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지영을 둘러싼 주변인물의 연기력과 설정 또한 눈에 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도 ‘나쁜 사람’이나 ‘문제적 인물’ 그려지지 않는다. 김지영의 상황을 부각하기 위해 시어머니나 셋째 남동생, 가부장적인 아버지 등의 캐릭터를 한 면으로 강조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환경에 맞춰 살아온 그저 서투른 인물로 그려진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김지영과의 관계에서 성장통을 겪는다. 
 
<82년생 김지영>은 문제를 제기하여 논란을 만들지도, 특별한 교훈을 남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성장형 가족영화’로 불리는 편이 어울린다. 영화의 중후반부 김지영과 엄마 미숙(김미경)의 연대는 모든 엄마와 딸의 공감을 정점으로 이끌며, 아내를 공감하려 애쓰는 대현(공유) 역시 자신대로 최선의 몫을 다한다. 서투르지만 서로의 목소리로 위로하는 가족들의 관계는 더없이 현실적이라 진한 여운을 이끈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연출한 김도영 감독은 “주변 엄마, 누이, 여동생, 딸, 후배와 동료 친구들이 어떤 풍경 속에 있는지 둘러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지영이들이 이런 길을 걸어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한번쯤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특정한 시각이 아닌 그대로를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영화가 되길 바란다. 오는 23일 개봉. 러닝타임 1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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