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힘내리' 이계벽 감독이 대구지하철 참사를 환기하는 법
[인터뷰] '힘내리' 이계벽 감독이 대구지하철 참사를 환기하는 법
  • 박주연 기자
  • 승인 2019.09.12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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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럭키'의 이계벽 감독, 2년 만에 신작
차승원 주연 '힘을 내요, 미스터 리'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소재
이계벽 감독 "고통 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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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적 트라우마를 남겼던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영화화 됐다. 영화 <럭키>(2016)를 통해 한국형 코미디의 매력을 전파한 이계벽 감독이 앞장섰다. 참사에 코미디의 접목이라니, 부조화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이계벽 감독은 따뜻한 웃음과 감동으로 이를 포장했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진정성이 영화 곳곳에 빛난다.    Editor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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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이들 우실 줄은…” 이계벽 감독이 당황한 이유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영화화했고 후천적 장애를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럭키>에서 유감없이 발산한 시원한 웃음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대신 잔잔한 웃음과 감동이 111분 러닝타임을 채운다. 인물의 행적을 함께 쫓고 소소하게 웃다보면 어느새 쌓인 감정들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계벽은 이러한 반응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허허 웃었다.
 
-영화가 개봉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아니, 너무 우시던데요.(웃음) 당황했어요. 언론 시사회 때도 그렇고 코미디 영화인데 막판에 너무들 우셔서…. 사실 감정 표현에 있어서는 신파를 걷어내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샛별(엄채영)이 투병 중이지만 영화 안에서는 안 아프잖아요. 부녀간의 감정 교류도 최대한 담백하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담담한 영화가 될 거라고 기대했는데 앞부분의 코미디를 잊을 정도로 우시더라고요.
 
-막판에 눈물을 쏙 빼는 영화라는 말엔 저도 공감해요. 그렇기에 <럭키>와 같은 코미디를 기대한 분들은 조금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철수가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인물은 아니라 캐릭터성이 짙은 인물로 꾸려나가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가족끼리 부딪히고 여행하는 코미디가 될 텐데 이런 흐름이 <럭키>의 느낌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다른 톤을 선택했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복기해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고 영화를 보기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 구조가 돼 버린 것 같아요. <럭키>에 비해 코미디가 약하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미디가 아닌 건 아니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웃겨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래도 비극적인 실화, 후천적 장애를 가진 인물을 내세웠기 때문에 코미디 수위 조절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마냥 희화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잖아요. 전개를 이어가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영화의 의미를 더 중요시해야했으니 조심스러웠죠. 코미디의 톤도 후반부 이야기와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고민했어요. 사고 후유증을 가진 분들을 조사해보니 숫자를 못 세거나 방향 인지를 잘 못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다양한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참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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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굳이 참사를 소재로 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대구에 대한 이야기가 회상처럼 스치는 부분이 있었어요. 잠깐이지만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이니 자료 조사를 했죠. 그러다가 안전문화재단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구 지하철 사건이 잊히는 게 두렵다, 슬프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가볍게만 다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제, 캐릭터, 이야기의 중심을 모두 참사 피해자분들께 맞춰서 수정했죠. 영화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 케이스예요.
 
-그런 면에서 코미디가 가능하고 드라마를 이끌 수 있는 배우 차승원의 캐스팅이 적절했어요

무엇보다 부성애를 이해해주실 분이 필요했어요. 꼭 결혼하고 아이가 있어야만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진심으로 공감하는 마음이 없다면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자연스럽게 차승원 배우가 떠올라서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받아주셨죠. 촬영하다보니 아빠가 아니면 불가능한 그림들이 나오더라고요. 표현하시는 걸 지켜보면서 정말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험이 많고 여유로우셔서 완숙한 모습들이 배어나왔던 것 같아요.
 
-차승원 배우를 12년 만에 코미디 장르로 끌어들인 비결이 있었나요?
제가 설득한 건 아니었고요. 차승원 배우도 코미디를 많이 기다렸던 것 같아요. 성향이나 성격상 워낙 코미디를 좋아하기도 하시니까요. 이런 장르를 그리워했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현장에도 늘 즐겁게 오셨고 재미있어하셨고 또 좋아해주셨고요.
 
-아역배우 엄채영의 연기가 발군이었어요
엄채영과 함께 최종 오디션에 올라온 친구들 중에서 큰 영화의 조연을 맡거나 근래 개봉한 영화에 주연을 맡은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정도로 다들 연기를 잘 했어요. 그런데 샛별이 아프다는 설정 때문에 아픈 연기를 하더라고요. 오직 엄채영만 코믹하고 씩씩한 연기를 했어요. 그게 너무 돋보였어요. 저와 배우들, 투자사, 제작사 할 것 없이 만장일치로 마음에 들어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채영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차승원 배우도 자극을 받지 않았나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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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벽 감독이 말한다 ‘코미디 예찬’
 
한 때 극장가에 코미디 장르가 전멸했을 시기가 있었다. 암흑기를 지나면서도 이계벽 감독은 코미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한 우물만 파는 정신으로 이어온 열정은 결국 <럭키>를 만나 꽃피웠다. 어떤 장르를 써도 결국 코미디가 된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이계벽 감독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코믹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감독님은 계속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셨나요
싫어하면 이렇게 못하지 않을까요? 사명감이나 의무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 성향이나 개성도 코믹하게 흘러가는 것 같고 결국 소재를 선택해도 코미디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코미디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코미디하면 ‘웃음’을 먼저 생각하시는데 코미디 영화의 갈등상태나 구조 자체는 상당히 세요. 그렇지 않으면 코믹한 상황들을 설정할 수 없거든요. 저는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이거 난처하겠는데?’ 하는 생각을 먼저 해요. ‘코미디? 뭐 별 거 아니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자세히 보세요. 위기 상황이 세고 엄청 큰 일이 벌어지거든요. 이야기 자체의 구조나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코미디 영화에 있는 것 같아요.
 
-코미디 이외에 다른 장르를 염두 한 적은 없나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 장르인데 무협을 만들고 싶어요. 무협은 말 그대로 무술을 겨루는 거잖아요. <취권>, <사형도수> 이런 것들도 무협영화지만 추석에 볼 수 있는 성룡의 무협물 보다는 1960~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외팔이> 시리즈 같은 것들요. 그 장르를 코믹하게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많이들 어색해하시고 시도를 잘 안하려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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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흥행에도 흐름이 있잖아요. 근래에는 <럭키>나 <극한직업>이 불을 지폈죠
그 흐름 때문에 제가 10년을 놀았네요.(웃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조폭코미디, 학원코미디,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많이 나왔던 시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지쳐갈 때쯤에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님을 비롯해 김지운,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가 흥행했고 영화의 분위기나 방향이 바뀌었죠. 그렇게 또 한참 유지되다보니 <럭키>가 나왔을 때 많이들 반가워하셨던 것 같아요. 흐름 때문에 제가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흐름을 잘 탔으면 좋겠네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포함해 추석시즌에 영화 3편이 동시 개봉해요
‘극장가 3파전’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건 밖에서 볼 때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다 잘됐으면 해요. 영화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못 내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잘 알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 등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죠. 또 영화계에는 다 인연이 있잖아요. 제 데뷔작 <야수와 미녀> 주인공이 류승범 배우였고 임지연 배우는 <럭키>에 출연했었는데 ‘<타짜>는 꼭 이겨야해!’ 라는 말이 나오겠나요. 다 잘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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