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겁고 평범한데, 어쩐지 눈을 뗄 수 없다. 무해한 서사에 청춘으로 대표되는 두 배우의 얼굴이 녹아들며 가장 이상적인 멜로를 완성한다. 여기에 아련한 감성을 끄집어내는 옛 음악은 덤이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처럼 우연히 만난 두 사람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가 엇갈리고 마주하길 반복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1994년 제과점에서 시작된 풋풋한 두 남녀의 첫사랑은 2005년까지 이어진다. 영화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미수와 현우의 10년의 세월을 담으면서 청춘의 성장, 관계의 성숙, 배경의 변화를 함께 보여준다.
서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단연 미수와 현우의 연애 이야기다. 지금보다 소통이 쉽지 않았던 시대에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어떤 엇갈림이 발생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애틋했는지를 잘 담아냈다. 특히 두 배우의 특화된 ‘현실 연기’가 발휘되며 영화는 몰입감을 높여간다.
연애담 속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은 ‘자존감’이다. 영화는 서로 엇갈리는 자존감의 지표를 하나하나 찍어가며 두 사람의 서사를 구축해간다. 현우가 미수의 제과점 문을 여는 첫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두 사람의 자존감 그래프가 시작되는 순간임과 동시에,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즉 현우는 가장 낮은 곳에서, 미수는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간을 향해 가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미수의 일방적인 추락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영화 속 하락은 결코 ‘부정’만을 내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의 자각과 극복, 대처의 방식들도 결국 또 다른 성장의 일부다. 내 자존감의 모양이 미수와 현우 중 누구와 더 닮아있는지에 따라 인상적인 순간, 혹은 대사들은 제각각 달라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재밌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유를 꼽자면 즉각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극적인 소재 하나 없이도 영화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번을 곱씹어서 내린 결론은 결국 영화의 ‘무해함’과 ‘현실감’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겪어본 것 같은 장면들은 내내 마음을 간질이고 기억조작을 유발하며 내면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보고나면 탈 없고 지쳐있던 마음을 씻겨주는 듯 개운한 느낌마저 선사받는다.
10년의 세월을 2시간 전개로 압축하면서 종종 개연성의 허술함도 발견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영화의 빈틈은 상상력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수준이며 오히려 그편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여름의 끝자락,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줄 멜로 영화로 역할은 충분하지 않을까. 오는 8월28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