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성기, 장인의 품격
[인터뷰] 안성기, 장인의 품격
  • 박주연 기자
  • 승인 2019.08.3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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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외길을 정진한 사람을 쉬이 이길 수 없다. 벌써 데뷔 62년차, 흔들림 없이 연기 인생을 갈고 닦아온 안성기처럼 말이다. 굵직한 작품에서 영화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줬던 배우, ‘장인정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단단한 내공을 보여주는 배우.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에 만나 더욱 반갑고 뜻 깊은 배우 안성기의 이야기를 다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Editor 박주연 | Photo 롯데엔터테인먼트

 

여름극장가 <사자>, 안성기의 존재감 
  
영화 <사자>는 2017년에 등판해 565만이라는 깜짝 흥행에 성공한 <청년경찰> 김주환 감독과 배우 박서준의 두 번째 만남, ‘명배우’ 안성기의 복귀작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보기 드문 퇴마 소재와 과감한 장르적 시도, 강렬한 판타지 액션을 내세운 한국의 오컬트 블록버스터로 제작 단계서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특히 한국의 <콘스탄틴>(2005,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으로 등극, 올 여름 극장가 최고의 텐트폴 영화로 지금까지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장르에 대한 신선함, 배우간의 시너지 등이 어우러지며 언론시사회 이후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자> 속 배우 안성기에 대한 평가는 더욱 눈부시다. 강한 신념과 의지로 모든 것을 걸고 구마의식을 행하는 안신부 역을 맡은 안성기. 구마 사제로서의 남다른 카리스마는 물론, 악을 마주한 격투기 선수 박용후(박서준)의 멘토이자 아버지로 따뜻한 휴머니즘까지 선사하며 <사자>의 절대적인 균형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바티칸에서 파견된 구마 사제를 표현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라틴어 공부에 매진하는 등 리얼리티를 높였다는 후문.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촬영 전까지 수천 번을 외웠다. 지금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막 나온다. 털어지지 않는다”고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명배우’ 안성기의 품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안성기는 “그동안 작은 영화를 주로 하다 보니 관객과 만날 기회가 적어지더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자>가 그런 영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신나게, 때론 긴장하면서 볼 수 있는 작품 같다. 김주환 감독이 안신부 캐릭터를 쓸 때 처음부터 날 생각하고 만들어서 고마웠다. 안신부의 따뜻함과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서 좋았다”며 <사자>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히기도 했다. 
  

'사자'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뒤 세상에 대한 불신만 남은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를 만나 자신에게 특별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안성기, 박서준, 우도환이 출연했으며 '청년경찰'(2017)의 김주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자'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뒤 세상에 대한 불신만 남은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를 만나 자신에게 특별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안성기, 박서준, 우도환이 출연했으며 '청년경찰'(2017)의 김주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 <사자>의 조화중심엔 안성기가 있었다
  

안성기는 <사자>를 통해 호흡을 맞추게 된 후배 배우 박서준과 우도환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나이, 경력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간극과 차이를 최소화하려는 배려였다. 안성기는 “박서준 씨, 우도환 씨에게 분명히 부담이 있었다. 보는 순간 ‘선배라고 해~’ 하며 편하게 대하니 바로 친해졌다. 그런 분위기가 작품에 반영이 된다. 정말 친해지지 않으면 어색한 부분이 생길 테니 그런 누를 범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촬영하고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촬영장 분위기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안성기의 말 그대로였다. 특히 배우진 중 막내였던 우도환은 스크린 첫 주연이자 무려 7시간 동안 특수 분장까지 소화해야하는 탓에 부담감이 컸다. 그는 시사회 현장에서 “두려운 지점도 많았고 책임감도 있었다”며 “감독님과 선배님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서준은 <사자> 인터뷰 자리에서 선배 안성기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여러 번 표하기도 했다.

박서준은 안성기에 대해 ‘좋은 인생 선배님’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언제나 젠틀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시다. ‘내가 비슷한 연배가 됐을 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한 번은 고민이 생겨서 조언을 바란 적이 있었는데 그냥 말씀해주시다가 며칠 후에 ‘내가 다시 생각해봤는데’ 라며 또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놀랍고 감사했다. 또 현장에서 선배님이 항상 웃고 계셔서 나 또한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주환 감독은 <사자> 작업 때부터 안성기 캐스팅을 염두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주환 감독은 “처음부터 안성기 배우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선한 기운, 인품과 가치관들이 안신부에게 가장 필요한 지점이었다”고 캐스팅 후일담을 전했다. 

 

모두가 놀란 안성기의 자기관리’ 
  
<사자> 촬영장에서 안성기의 ‘좋은 몸’과 ‘자기 관리’는 스태프, 배우들 사이의 큰 화두였다. 특히 극 속에 민소매를 입고 거울을 보는 장면에서는 ‘근육이 최대한 안 나오도록 해달라’는 김주환 감독의 주문이 있었을 정도라고. 안성기는 “그래서 구부리고 촬영했다. 안신부가 구마 사제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필요할 테고 운동해서 몸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력만 센 사람이었다”고 말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안성기는 날마다 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조금이라도 땀 흘리지 않으면 오히려 컨디션이 저하된다고 자기 관리 비법을 밝혔다. “현장에 가면 체력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걸 감수해야 연기를 할 수 있다. 그 자체가 힘들면 부대끼는 모습이 나올 거고 연출자도 배우가 요구에 못 따라주니 애초에 생각한 장면을 찍어내기 힘들지 않겠나.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가능하게끔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되도록 몸이 가벼운 쪽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체중을 잘 유지하는 건 배우를 오래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작품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 단순히 아버지, 할아버지 역할만 맡게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현장에 조금 더 오래 행복하게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체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식상할 수 있지만 영화는 나의 행복, 나의 꿈, 그런 것이에요.

 

# 62년차 배우한국영화 100주년의 산증인 
  
올해는 영화계에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았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국격을 높였고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기도 했다. 한국영화의 산증인이기도 한 안성기가 어린 후배 배우들과 의기투합해 트렌디 영화에 출연했다는 점도 올해 거둔 유의미한 기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안성기는 한국영화탄생 100주년에 대한 남다른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산증인답게, 영화사에 대한 흐름과 당대 분위기를 줄줄 읊었다. 그는 “감회가 남다르다. 돌이켜보면 한국영화사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전쟁 후에 시작됐다고 가정했을 때 55년 이후 한국영화들이 많은 관심을 받은 것 같다. 나는 1957년부터 영화를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때도 국민들이 영화를 참 좋아했다. 60년대에는 전성기도 왔었다. 1년에 20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7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유신 체제 속에서 살게 됐는데 그때 한국영화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상당수 영화가 정치적으로 사용됐고 보기 힘겨운 영화들이 판을 이뤘다”고 회상했다.
  
이어 “80년대 <바람불어 좋은 날>이라는 의미 있는 작품이 나왔다. 시대를 잘 담은 영화였다. 그 전까지는 그렇게 담을 수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지만 ‘격변의 시대’ 80년대라서 가능했다. 그 다음부터 영화가 조금씩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게 됐다. 주로 못했던 이야기의 영화를 선택하려고 했고 현실성, 역사성, 사회성 있는 영화를 택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멜로를 잘 못하는 배우가 됐다”고 머쓱하게 웃기도 했다. 
90년대의 민주화와 스크린 쿼터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안성기는 “세계적으로 영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아마 거의 없었을 거다. 이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인정을 많이 받았다. 한미 FTA 체결로 인해 그게 또 한 번 깨지긴 했지만 우리나라 영화의 실력과 경쟁력이 쌓이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필름시대를 넘어 디지털화가 이루어져 영화 제작에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앞으로 논할 문제는 ‘이야기’인 것 같다. 감동과 공감, 충격이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숙제”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안성기의 타임라인 
  
부드러운 목소리, 온화한 미소, 중후한 매력을 가진 영화배우 안성기. 언제부터라고 명명할 수도 없을 만큼 안성기는 오랜 시간 대중들 기억에서 ‘대배우’이자 ‘국민배우’로 자리 잡았다. 1957년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영화사와 함께 발맞춰온 배우니 만큼 당연했다. 안성기는 5세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했다. 1957년 6세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출연했고 이후 크고 작은 작품 160여 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 진학과 함께 잠시 배우 활동을 접기도 했지만 20년대 후반 다시 충무로로 복귀해 꾸준히 연기 인생을 걸어왔다. 
  
안성기가 인터뷰를 통해 직접 이야기한 것처럼 1980년대에 그는 숱한 사회파 영화에 출연하며 강경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연기자로서의 발판을 다졌고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등을 통해 거장 임권택 감독과도 연을 쌓았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적 페르소나로서 <꼬마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등에도 출연한 것도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다. 
  
1990년에는 역할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졌다. 코미디영화 <투캅스>(1993)로 기존에 본 적 없는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는 악역을 맡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후일담으로 “영화에 나오는 안성기 선배님의 대사는 딱 한 마디였고 그것 역시 애드리브였다. 원래 시나리오 상에는 대사 한 마디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안성기는 남다른 존재감으로 극을 압도했다. 앞선 두 작품을 함께 한 배우 박중훈과는 <라디오스타>(2006)를 통해 또 한 번 의기투합했고, 흥행 역사를 썼다. 여전히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인생작’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대종상 영화제부터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까지 다양한 수상을 휩쓸었다. 

 

이후 <사냥>(2016)에서는 액션 연기를 소화해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실감케 하기도. <사냥> 이후 약 3년 만에 다시 상업영화로 돌아온 안성기는 <사자>를 통해 또 한 번 연기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성장에 있어 나이는 중요치 않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주름이 늘어가는 건 중요치 않으며 속 안에 든 에너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는 안성기. 그의 연기 철학과 소신은 앞으로도 계속 될 안성기의 연기적 행보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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