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연의 아이들을 관찰하는 재미, '우리집' 윤가은 감독
[인터뷰] 천연의 아이들을 관찰하는 재미, '우리집' 윤가은 감독
  • 박주연 기자
  • 승인 2019.08.21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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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데뷔작 '우리들' 에 이은 3년 만의 차기작
어린이 배우들을 위한 촬영 수칙도 직접 만들어
윤가은 감독 "현장에서의 아이들 아이디어 적극 반영해"

 

윤가은 감독이 또 한 번 아이들 눈높이에 카메라를 맞췄다. 데뷔작 <우리들>(2016)에 이어 두 번째다. 사려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아이들 세상은 여전히 꾸밈없고 말갛다. 그리고 더욱 씩씩하고 재기발랄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정제되지 않은 천연의 매력을 머금은 세계. 윤가은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Editor 박주연 | Photo 롯데엔터테인먼트
  
초등학생 사이에도 관계맺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전작 <우리들>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 윤가은 감독이 이번에는 가족문제로 눈을 돌렸다. 매일 다투는 부모가 고민인 12살 하나(김나연)와 이사를 자주 다니는 게 고민인 10살 유미(김시아), 7살 유진(주예림) 자매. 연령도 환경도 다르지만 집을 지키기 위한 목적 만큼은 확실한 세 친구가 <우리집>의 주인공이다.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한 편의 동화같은 <우리집>은 전작보다 좀 더 활기차고 스펙터클해졌다. 덕분에 윤가은 감독의 세계도 한 층 더 확장됐다. 
  

 

◎ 촬영부터 소품까지, 아이들에 의한 <우리집>
  
<우리집>에는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겪었던, 해봤던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실감나다. 윤가은 감독의 섬세함이 베이스로 깔린 덕분이겠지만 이 위로 쌓아올린 아이들의 아이디어도 무시할 수 없다.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영화를 만들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대본 대신 즉흥극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을 활용하는 것도 날 것 그대로의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 위함이다. 
  
Q. 영화 잘 봤습니다. 전작에 이어 아이들 시선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A.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하나(김나연)의 눈과 가슴사이에서 카메라가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했죠. 아이들의 키 차이 때문에 카메라가 밑으로 이동하는 건 자유롭게 두되, 눈 위로는 함부로 올라가지 말자고 규칙을 세웠어요.
  
Q. 키 차이도 그렇지만 세 배우의 연령대도 다 다르죠. 친해지기까지의 고충은 없었나요?
A. 맞아요. 나이가 다 전학년을 공부해야 하는 숙제가 제게 있었어요.(웃음) 초반에는 아는 척을 하려고 했어요. 인기 아이돌의 노래나, 인기 유튜브 영상 등을 공부했죠. 그런데 점점 지치더라고요. 제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걸 아이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줄 리도 없고요. 

여기에 아이들끼리 빨리 안 친해지는 것 같은 조바심까지 나서 힘들었어요. 혼자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친해져 있더라고요. 제 생각보다 훨씬 더요. 그 안에서도 언니 동생으로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서 우애를 다지고 있어어요. 아! 애초부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 역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는 평범하게 사는 얘기를 나눴어요.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모기는 잘 물리는지,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요. 제가 먼저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있었어요. 편해졌고 나니 아이들과 진솔한 이야기도 가능해졌죠.
  

베를린국제영화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외 30개 이상 영화상을 휩쓸며 전 세계가 사랑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윤가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우리집'.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안지호 등 윤가은 감독의 심미안으로 발견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외 30개 이상 영화상을 휩쓸며 전 세계가 사랑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윤가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우리집'.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안지호 등 윤가은 감독의 심미안으로 발견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Q.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영화잖아요. 소품도 그냥 만들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A. 영화 미술이 아이들의 터치를 표현할 때 가끔씩 ‘만들어진 것’처럼 티가 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관객들도 정서적으로 감정이 와장창 깨지죠. 그걸 경계했고 또 아이들의 취향과 개성이 반영된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극중 하나의 요리책이나 유미(김시아)의 종이접기 상자는 배우가 직접 꾸미고 만들어보도록 숙제를 내주기도 했어요. 등장한 소품들은 아이들의 글씨와 그림을 가지고 미술 팀에서 2차 창작을 한 거예요. 
  

Q. 영화 속에 즉흥극의 묘미가 살아숨쉬는데 감독님의 개입은 전혀 없었나요?
A. 신 마다 다른데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장면을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밥 먹는 신 같은 경우도 ‘오므라이스에 캐첩을 그리며 먹자’가 전부였고 그 가이드 안에서 아이들이 수다를 떨면서 찍은 거예요. 편집 감독님이 엄청난 분량을 삭제하고 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주셨죠.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토대로 촬영을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장면이 탄생했을 땐 ‘예스!’를 외쳐요. 너무 짜릿하거든요. 
  
Q. 아이들의 숨소리나 관자놀이에 맺힌 땀방울 디테일들도 상당히 좋았어요
A. 그걸 디테일로 봐주셔서 감사해요.(웃음) 사실 현장에서 가장 큰 고난은 아이들의 땀이 멈추지 않는 거였어요. 작년 7~9월까지 촬영을 진행했는데 폭염이 계속되던 날 에어컨 없이 조명을 다 켜두고 찍은 컷들이니까요. 슛 들어가기 전까지 키친타올로 아이들 땀을 닦아주는데도 금세 흐르더라고요. 행여 아이들이 덥거나 지쳐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 표정이 너무 좋았나봐요. 아이들이 잘 표현해줘서 더워서 나는 땀이 아니라 노느 열중해서 나는 땀처럼 보인 것 같아요. 이건 정말 배우들의 힘이에요. 
  

 

◎ 윤가은 감독의 특별한 <우리집> 촬영 수칙 
  
언론시사회 당시 기자들에게 배부된 프레스킷 안에는 A4 1장 분량의 <우리집> 촬영수칙이 있었다.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 하는 성인분들게 드리는 당부의 말이었다. 이는 데뷔작 <우리들>을 통해 간과했던 것들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윤가은 감독의 다짐이자 각오의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윤가은 감독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미안한 것이 많다고 말한다. 

Q. 아이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게 중요한 작업이잖아요. 하지만 이걸 지키긴 쉽진 않을 것 같아요
A. 저도 유지가 잘 안 돼요. 자꾸 실수해요. 20대, 30대 초반까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많이 했기 때문에 잘 안다고 자만했었는데 <우리들>을 찍으면서 그게 깨졌어요. 내가 뭘 많이 모르는구나 싶었죠. 3년 전 <우리들> 오디션과 <우리집> 오디션을 비교했을 때 같은 나이대 배우더라도 아이들의 관심사나 고민들이 전혀 달라져있더라고요. 이런 걸 발견해나가는 과정이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Q.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만든 게 촬영장 수칙인가요?
A. 현장에서 아이들은 웬만하면 참아요. 배우로서의 책임감이 성인 못잖거든요. 오히려 더 클 때도 있고요. 힘들지만 참는 게 보이는데도 어떨 땐 제가 묵과하기도 해요. 촬영 시간에 쫓기다 보면 촬영을 속행해야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배우 이전에 아이들이라 보호 받아야 하는데 제가 저렇게 아이들을 침해해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생기니 괴롭죠. 그걸 상기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도 해요. 
  
Q. 함부로 칭찬하지 않는 것 또한 수칙 중 하나였죠
A. 어른들의 ‘예쁘다’는 절대적인 미의 기준에서 평가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 존재 자체에 대한 표현인데 아무래도 연기를 하는 배우다 보니 아이들이 달리 받아들일 때가 있더라고요. 또 ‘어, 예뻐~’ 하고 대충 칭찬할 때도 금방 알아채요. 그럴 때 상처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함부로 독려도 칭찬도 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대신 ‘같이 해보자! 힘내 보자! 나도 더운데 너도 덥지? 잘 해보자!’ 하고 일에 대해 북돋는 이야기를 하죠. 
  
 

“화자가 아이지만 제가 아이 때 못했던 이야기를 성인이 돼서 이야기하는구나 싶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계속 해보고 싶어요.”

 

 

◎ 도대체 어디서 찾았을까? 아이들 캐스팅 비화 
  
윤가은 감독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집> 배우들이 더 궁금해졌다. 영화를 뼈대를 구축하고 완성한, <우리집> 그 자체인 배우들의 이야기말이다. 캐스팅 기간만 총 3개월. 여기에 극중 신스틸러로 대체불가 존재감을 발산하던 주예림의 합류 기간까지 합치면 총 4개월 이상 소요됐다. 윤가은 감독은 이 기간을 가장 괴롭고도 즐거운 기간이라고 회상했다.
  
Q. 아이들을 캐스팅할 때 가장 중점을 두셨던 부분이 있나요?
A. 저와 나이대는 달라도 대화가 잘 통하고 친구하고 싶은 사람이요. 어려도 대화가 재미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대화라는 건 일방적인 게 아니잖아요. 자극을 주고 반응을 하는 거니까 기본적인 소통의 방식이 맞는 친구들이 끌려요. 그런 친구들이 대부분 즉흥극도 잘 하더라고요.

Q. <우리들>에 윤(강민준)이 있었다면 <우리집>엔 유진이가 있어요. 주예림 배우의 캐스팅이 너무 좋은 활력이 된 것 같아요
A. 유진 역에게 아이의 느낌을 바랐어요. 그 느낌에 부합하는 연령대는 미취학 아동 뿐이라 현실적으로 촬영이 힘들죠. 경력이 많은 친구들은 어떤 부분 기계적인 면이 있었고요. 나중엔 도저히 못 찾겠어서 다른 스케줄이 있는 아이들까지 수소문했는데 그때 주예림을 만났어요. 1차로 얘기를 나눴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자기 의견도 분명했고 무엇보다 감독인 제 앞에서 척을 하지 않았어요. 하나와 유미의 즉흥극에 참여하면서도 무방비함과 사랑스러움이 있었어요. 하나의 상황이 주어지면 끝까지 임하는 몰입력도 있었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무조건 매달려서라도 촬영하는 수밖에 없었죠.
  
Q. <우리들>에 나왔던 배우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게 굉장히 반가웠어요. 거창하지만 감독님의 세계관이 이렇게 구축되는 것 아닐까요?
A. <우리들>의 선(최수인)과 지아(설혜인)이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집> 이후 차기작에도 하나, 유미, 유진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럴 계획을 애초에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러려면 빨리 차기작을 만들어야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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