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우식, 평범하게 비범하게
[인터뷰] 최우식, 평범하게 비범하게
  • 박주연 기자
  • 승인 2019.08.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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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갛고 앳된 얼굴이 서늘하게 번뜩이다가도 이내 안타까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기생충> 속 최우식의 모습이다. 최우식은 극 속에서 다양한 얼굴로 쉼 없이 변주를 시도한다. 평범함과 비범한 사이, 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관객들 마음에 스민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다.
 
Editor 박주연 | Photo CJ엔터테인먼트
   

개봉 후 반응이요? 어마어마하던데요?” <기생충> 개봉 당일에 만난 최우식은 뜨거운 관객 반응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한국 최초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두 개의 타이틀로 극장가를 장악했으니 말이다. 특히 최우식은 극중 기택(송강호)과 박사장(이선균)의 가족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인물 기우를 맡았다. 앞으로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한 줄이 될 작품. <기생충>은 최우식에게 어떤 영화로 남았을까.
   
# 봉준호 감독과 2번째 만남캐스팅 후일담
 
최우식은 <옥자>(2017)로 봉준호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16<옥자> 촬영이 끝난 뒤, 봉 감독은 극중 김군 역을 소화한 최우식에게 넌지시 차기작 계획을 물었다. 당시 영화 <마녀>(2018)를 준비 중이던 최우식은 몸을 키울 예정이라고 대답했고 봉 감독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마른 몸을 유지해주길 당부했다.
 
최우식은 김군 역이 워낙 왜소하다보니 이미지 변신 측면에서 몸을 키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대로 있어달라니, ‘왜 그러시지?’ 하고 의아했죠라고 회상했다. 막상 봉 감독에게 캐스팅 제의를 받았지만 처음엔 어떤 장르의 어떤 인물로 나오는지도 몰라서 막연히 기대와 부담이 공존했다고. 그는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2번째 콜을 하셨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영화 <거인> 속 영재나, <옥자> 속 김군을 보며 제가 가지고 있는 영양이 필요하고 안쓰러워 보이는 이미지가 좋았다고요라고 설명하며 웃었다.

 

 

# 최우식, ‘분량요정으로 거듭난 사연
 
<기생충> 제작보고회 당시 최우식의 귀여운 말실수(?)가 인터뷰에서도 또 한 번 회자됐다. 대 선배들 사이에서 잔뜩 긴장한 최우식이 “<옥자> 때보다 역할이 커졌다고 말하자 이선균과 송강호 우리 분량이 최우식보다 적다고 장난스럽게 응수한 것이 화제를 모았던 것. 의도치 않게 분량 자랑을 하게 된 최우식은 사실 분량에 대한 엄청난 부담이 있었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 말투와 톤을 잡기 위해 먼저 제 대사만 골라서 읊는 스타일인데 대본을 넘겨도, 넘겨도 기우 대사가 계속 나오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게다가 <기생충>에서는 문어체도 구어체도 아닌, 묘하게 현실을 비껴간 독특한 말투들이 상당 장면을 이뤘다. 부담이 크지 않았냐는 질문에 최우식은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대본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대사가 술술 나와요. 영화마다 역할들이 가진 특유의 말투나 대사가 있지만 이번에는 이상할 정도로 대사가 입에 붙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가지 부담은 있었지만 정말 좋았던 건 기우를 연기하면서 다양한 얼굴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기생충>에서는 특히 기우의 감정선이 중점이 되는 것 같아서 단계별로 감정이나 표정들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라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 <기생충> 속 기우와 최우식의 싱크로율
 
최우식이 맡은 기우는 어쩌면 우리네 가장 어두운 청춘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경제 활동을 포기한 부모님, 어린 여동생 사이에서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해내야하지만 실패와 좌절 끝에 결국 집에 눌러앉고야만 인물이다. 최우식은 이런 기우 캐릭터에 대해 항변하기도 했다. 그는 전원 백수 타이틀 때문에 쉽게 오해할 수 있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재능이 있어요. 기회가 없어 실패했을 뿐이죠. 기우도 4수생인 건 맞지만 그만큼 노력 해온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계획이 틀어지면 멘붕이 오고 실전에 약하다고 할까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고 실패는 항상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기우를 보며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공감대 때문에 기우가 밉지 않은 캐릭터로 그려질 수 있었고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 최우식은 계획적인 사람일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계획이 계획이다라는 기택의 대사도 나오잖아요. 제 직업상 계획을 짜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기대를 해도 기대한 것만큼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오늘에 충실하려는 스타일이에요라고 덧붙였다.

 

 

# 최우식이 말한다 봉테일의 정점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로 통한다. ‘봉준호가 곧 장르라는 외신의 극찬이 이어질 정도로 봉준호 월드는 견고하고 독특한 색채를 띤다. 이 또한 밀도 높은 사전 설계가 있기에 가능했한 일이다. <기생충>에서는 영화 배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개의 집이 봉준호 식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저택과 반지하 모두 봉 감독의 진두지휘 하에 만들어진 세트장이라는 후일담이 밝혀져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최근 독립해 빌라에서 평범하게 생활 중이라고 밝힌 최우식은 박사장의 저택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어요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정교해서 진짜 건물 같았어요. 무엇보다 집 냄새 나는 집이라 세트의 어색함이 전혀 없었어요. 덕분에 어색하지 않게 연기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반대로 반지하 방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아늑해요. 방역차 연기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신에서는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더라고요라고 천진한 대답을 이어갔다.
최우식은 봉 감독에 대해 디테일로 유명하신 분이니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반대였어요. 콘티 대본까지 직접 그리시고 동작, 행동, 미술소품 등 전부 디테일이 뚜렷한데 그게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표본은 아니었어요. 각자가 가진 캐릭터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빌드 업 했으면 거기에 살이 되는 디테일을 감독님이 주신 것 같아요라며 만족해했다

 

# 최우식이 기대치에 맞서는 방법
 
<부산행>(2016)으로 천만 배우 라인업에 올라섰고 세계가 주목하는 거장 봉준호 감독과 무려 2번의 작업을 이뤘다. 최우식은 상당수의 또래 배우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한 경력을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제가 출연한 작품 중 큼직한 영화들만 주목 받고 있지만 사실 다양한 영화들에 출연해왔어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다보니 이런 보너스 같이 행복하고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게 아닐까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다음 작품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돼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있으실 테니 걱정도 되지만 또 좋은 현장에서 열심히, 잘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제가 갈 길의 답을 찾은 기분이에요. 어떤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냥 그 과정을 즐기는 배우가 싶다고요. 앞으로도 장르, 역할을 떠나서 제가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해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봉준호 감독님과 2번째 작품을 했고
송강호 선배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죠.
<기생충>을 통해 좋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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