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뢰를 쌓는 배우, 설경구
[인터뷰] 신뢰를 쌓는 배우, 설경구
  • 박주연
  • 승인 2019.04.04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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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GV아트하우스
사진=CGV아트하우스

 언제 만나도 솔직담백하다. 꾸밀 줄도, 숨길 줄도 모르는 배우다. 매사 올곧고 강단 있는 이 배우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묵묵하게 제 길을 걷는 배우 설경구.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묵직하게 각인되는 신뢰감이, 오늘 그리고 내일의 배우 설경구를 기대하게 만든다. 
  
“<불한당>으로 폈다가 다시 구겨져버렸죠, 뭐.”  절반의 진심이 담긴 설경구의 너스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설경구는 <우상>에서 죽은 아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아버지 유중식 역을 맡아 꾀죄죄한 얼굴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극을 활보한다. 슬픔에 깊게 잠식된 눈빛과 수면 아래 들끓는 감정의 진폭은 관객들의 마음마저 무겁게 짓누른다. 감독과 배우 할 것 없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집요하게 달려들었던 현장. 그렇기에 설경구는 장난스럽게 우는 소리를 하다가도 금세 진지하게 말을 건넨다. “그래도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라고. 

사진=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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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경구, 이수진 감독과 실랑이 벌인 사연 
  
데뷔 26년 차, 많은 촬영을 겪었지만 <우상>은 그 중에서도 쉽지 않은 현장이었다. 느긋하면서도 집요한 이수진 감독의 스타일에 ‘좀 그만해~’ 하고 반기를 든 적도 있지만 포기 않는 그 성향 덕분에 신뢰도 절로 쌓였다고. 설경구는 “이수진 감독은 화면을 꽉 채우려 해요. 화면이 살아있었으면 하는 집요함이 있다고 할까요. 촬영 하다가도 무언가 생각나면 동선을 바꿔버리기도 해요. 저도 사람이고 매일이 기분이 다르다 보니 어느 날은 짜증나고 어느 날은 그냥 받아들이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구나’ 하는 신뢰가 생겨요”라며 “만약 차기작을 하더라도 ‘나와는 맞지 않는 캐릭터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죠”라고 회상했다.
  
<우상>은 쉬이 즐길 수 있는 상업 영화는 아니다. 세 인물이 각자의 ‘우상’을 향해 쫓고 충돌하는 과정들을 날 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담아낸다. 어둡고 톤 다운된 화면 안에서 질척이는 인물들은 이질적이고 난해하다. 설경구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그렇기에 <우상>의 유중식을 맡았다고 전했다. 그는 “중식 캐릭터가 저 역시도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답답함 때문에 이 캐릭터를 연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상>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든 관객이 본 게 정답이에요. ‘네 생각이 틀렸어’라고 말할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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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색, 태닝도 <우상>을 통해 얻은 값진 첫 경험(?)이었다. 몸무게도 감량했고 기계 태닝으로 피부도 그을렸다. 설경구는 “낯설었는데, 처음 해본 거라 좋았어요”라며 “캐릭터에 도움이 됐던 설정들”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3~4세 지능을 가진 아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탈색을 한 거예요. 이 아버지의 부성애를 표현하는 방법이랄까요”라고 말했다. 한 쪽 다리를 저는 장면에서도 병뚜껑의 날카로운 부분을 발바닥을 향해 세워 디테일을 살렸다. 수분기 없이 바짝 쪼그라 든 채 아들의 죽음을 맹목적으로 파헤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설정의 치밀함, 설경구의 연기력 시너지로 완벽하게 구현된 셈이다. 

 

사진=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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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한당원? 생명의 은인”…설경구의 진심 
  
우상이 있느냐는 질문에 설경구는 단호하게 ‘없다’고 대답했다. 반대로 누군가의 우상이 되지 않았느냐는 말에는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을 통해 아이돌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게 된 설경구는 “팬들은 나를 위해 주는 좋은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팬들과 꾸준히 주고받는 피드백이 보기 좋다는 말에 설경구는 “편지나 선물을 주셨으면 잘 받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시겠어요? 당연히 ‘잘 받았다’는 피드백을 해드려야죠. 얼마나 고마워요. 정성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지천명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이후에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설경구는 허허, 웃으며 “그랬다면 <우상>에서처럼 구겨지는 걸 했겠어요?” 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이어 “그건 배우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아요. 정말 큰일날 일이죠. 길게 볼 줄 모르는 거예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제 일이고 그 모습을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것들을 감사해할 뿐이죠. 제 팬들도 ‘왜 이런 역할은 안 하냐’고 실망하시는 분들도 아니고요”라고 전했다. 
  
<불한당>에 이어 변성현 감독과 설경구, <불한당> 모든 키 스태프들이 함께 참여한 <킹메이커>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설경구는 “나 불한당원들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생명의 은인 같은 분들”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킹메이커>는 작년 가을에 크랭크인이 됐어야 했는데 <불한당> 스태프들을 전원 다시 모으자고 뜻이 모아져서 이번 달 말로 크랭크인을 미뤘어요. 분장, 미술, 소품, 촬영, 조명까지 전부 다 모였고 그래서 기대가 커요”라고 대답했다. 설경구는 팬들에게 큰 힘을 얻는다며 “앞으로도 무슨 질타라도 감사하게 받겠습니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 26년차 배우 설경구는 여전히 목마르다 
  
맹목적으로 쫓는 우상은 없지만 꾸준히 집착하는 대상은 있다. 바로 연기다. 모든 대중의 우상이 되고 싶어 하는 배우의 보편적인 집착과 바람은 설경구에게도 존재한다.
“연기로 100% 구현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씩 좁혀가려는 집착이 있죠. 모든 배우들이 캐릭터에 접근 하려는 집착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집요하게 덤빌 수 있을 만한 게 연기고 잘 되면 애처럼 좋아서 뛰다가도 안 되면 바로 좌절하는 것도 연기인 것 같아요. 저에게 연기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어느덧 데뷔 26년차. 한국 영화사의 산증인이자 현역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설경구. 후배 들에게는 귀감이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롤모델로 여전히 손꼽히는 배우이기도 하다. 설경구는 “선배로서 책임감 같은 거 없어요. 선배라고 지적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우린 다 동료잖아요. 한석규 선배도 현장에서도 그랬고 저 또한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에요” 라고. 어린 배우들과는 선후배 관계보다는 동료로서 있고 싶다는 설경구. 담백하고 쿨한, 딱 그 다운 대답이었다.
  
다만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혹독하다. 20년을 연기해도 더 힘들단다. 장면 장면의 디테일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매 작품마다 따른다고 말한다. 설경구와 배역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면서 대중들 앞에 오래, 겸손하게 머물고 싶다고.
  
“배우는 무모한 직업이자 집착하는 직업이에요.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100% 완성된 모습을 어느 배우가 보여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제 스스로를 평가하기 어렵겠지만, 기회를 준시다면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50대가 돼서도 연기할 수 있는 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복 많은 사람입니다. 계속 겸손하게 당당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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